◎「X세대」불확실성은 새문명의 씨앗/「인간안의 우주」깨칠때 자기실현/참된 이기의 길은 이웃향한 이타/기계예속 벗어나 생명화 노력을 1990년 이후 오늘의 젊은 세대를 「X세대」라 부른다. 어떤 개념을 설정할 수 없고 목표가 불분명하며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불확실성의 세대. 직업을 통한 자기실현이나 자기완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구속이나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세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같은 세대.
이 세대의 특징은 자기개성 존중과 그 철저한 이기주의다. 아무리 세상에 이롭다 하더라도 자기생명에 해가 된다면 제 몸의 터럭 한 올도 내어줄 수 없다는 양주(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BC 440∼360)의 철학을 생각나게 하는 세대가 바로 이 세대다. 나이든 사람들은 이 세대에 대해 사뭇 부정적이며 특히 그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소리높여 질타한다. 그리곤 기회있을 때마다 높은 국가관이나 사회의식, 이타주의의 당위를 들어 설득하려 한다.
○자연에 대한 질문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민족과 국가의 이념이 희미해지고 그 경계를 넘어 개인성을 실현하며 개인을 해방하려는 흐름이 지배적인 시대다. 탈근대, 초근대의 특징이며 문명전환의 징후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80년대의 맹렬한 집단주의열풍이 지나간 뒤의 허탈감과 좌절감으로 인한 반동이라는 측면도 있다. 이념에 대한 냉소주의와 기존 가치관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 그것이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은 분명 있다. 풍요를 만끽하려는 듯 패션에 몰두하는 것이나 도처에서 드러나는 속물근성, 그리고 감각지상주의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일단 X세대에 대해 긍적적이다. 그들의 불확실성, 개성존중, 이기주의는 새로운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낡아빠진 이념이나 위선적인 이타주의보다, 폭력적인 집단주의보다는 그들의 불확실성과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훨씬 신선하고 새로운 인간,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발생당시에 이미 군집화하며 군집화 다음에 개체화한다는 것이 근대의 생물학통설이다. 그러나 현대의 생물학은 돌연변이와 다산성 다양성을 통해 생명은 처음부터 개체화, 개별화하면서 태어나고 동시에 또는 차츰 군집화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개성의 근거가 이미 자연계에 있는 것이다. 사실 삼라만상이 모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가만히 보면 사람도 천인천색이다. 생명은 자유와 다양성과 차이를 근거로 해서 비로소 평등한것이다. 마땅히 개성화를 통해 새롭게 사회화해야 할것이다.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 뿐인가? X세대의 이기주의는 그것으로 족하고 좋은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속물적 이기주의는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해로울뿐이다. 「이기」라고 했을 때 이롭게 하는것의 대상은 「자기」이고 「개성존중」이라고 했을 때 존중의 대상은 「개성」이다. 자기와 개성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길래 그처럼 터럭 한 올도 내어줄 수 없다고 고집하는 것인가? 참된 이기주의자, 개인주의자라면 바로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연생명은 어째서 개별화하면서도 또한 군집화하는가, 인간의 문화는 어째서 자연과 한 뿌리이면서 또한 다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바로 이 질문 속에 참된 개성화와 자기실현의 길이 있고 새로운 사회와 문명창조의 길이 있다. 모든 위대한 성자들과 선승들의 빛나는 길도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자기」란 「자아(EGO)」와 다르다는것이 현대심리학의 주장이다. 「자기」란 의식의 중심인 「자아」와는 다른 집단적 무의식, 우주적 무의식이다. 이 전체적 무의식을 자기 나름대로 독특하게 깨달아 실현하는 것이 바로 「개성화」다. 따라서 「개성」이란 자기나름의 독특한 우주적 무의식인것이다.
인간의 뇌수속에는 포유류의 기억과 파충류의 기억까지 살아 있으며 인류 전역사의 기억이 살아 있다. 현대의 뇌수학은 우주속에 일어나는 모든 사태가 인간의 뇌속에 그대로 일어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유기물뿐만 아니라 무기물의 기억, 우주진화사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생명의 나이는 70년 80년이 아니라 적게 잡아도 생물발생부터 따져 35억년, 크게 잡아 빅 뱅(BIG BANG)부터 시작해서 1백50억년이라고 해야 할것이며 종교적 직관으로 말한다면, 그 이전과 현재이후까지 합쳐 「무궁」이라 해야만 할 것이다.
○자기는 바로 대아
이러한 자기, 이러한 큰 생명을 두고 옛사람들은 「대아」라고 불렀다. 대아가 곧 영성이며 각성이다. 자기는 바로 「소아」가 아닌 「대아」인 것이며 개성이란 곧 「소아」속에 실현되는 「대아」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개인안에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가 살아 있는데 가정, 이웃, 사회, 민족, 인류, 뭇생명들이 자기안에 살아 있지 않겠는가? 참으로 이기하고 참으로 개성존중을 하려면 참으로 자기성찰을 해야 할것이며 참으로 자기의 독특한 우주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개성화하려는 인간은 먼저 자기안으로 들어간다. 내면에의 길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이 혼란스런 전환기에 젊은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내면에의 길에서 자기 곧 새로운 외면에의 길임을 깨닫는다.
내면의 우주는 양극성적으로 생성한다. 그것은 역설적이다. 역설적인 내면체험은 모순에 찬 세계생성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것은 나와 세계의 새로운 관계다.
「안」에 새로운, 그리고 독특한 「밖」이 있다. 「자기나름의 세계」가 거기 있는 것이다. 거기 새로운 삶이 살아 있는것이다. 그 안의 삶을 체험한 사람은 밖의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 자기안에 살아 있는 우주를 체험한 사람은 가정, 이웃, 사회에 대해 자기나름의 독특한 창조적 관계를 만들어낼것이며 인류와 뭇 생명과 지구와 우주에 대해 그 근원적인 생명의 질서에 따른 자기나름의 독특한 창조적 관계를 만들어 낼것이다.
지금은 문명의 전환기다. 인간과 자기자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젊은이의 자기성찰과 개성실현은 곧 새로운 사회와 문명의 창조가 되는 것이다.
X세대를 두고 「신인류」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말이 장사꾼이나 매스컴의 얄팍한 광고술이나 저널리즘으로 끝나서는 안될것이다. 참으로 신인류가 탄생해야 할 지금 참으로 신인류가 되려면 참으로 개성화해야 하고 자기실현을 해야 한다. 컴퓨터나 TV, 온갖 편리한 기계의 풍요한 감각, 시뮬레이션의 홍수속에 잠겨서 만족하는 것이 자기성찰, 자기실현의 길은 아니다. 기계에서 자기개성을 찾으려 하면 기계를 닮은 자아를 만나게 될것이다. 기계를 닮은 정신은 끔찍한 비극이다. 기계를 통어할 줄 알고 기계를 자기내면의 생명의 모습으로 바꿀 줄 아는 정신을 발견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기계가 인간과 생명을 위해 봉사하게 될 것이다.
자기 안에는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이 살아 있다. 자기성찰을 통해 이것을 인식하고 그 우주생명을 공경하여 거기에 일치하는것이 개성화요 자기실현이다. 자기 안에 우주생명이 살아 있다면 이웃안에도 살아 있음을 인정할 수 있고 이웃을 공경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다. 나아가 동·식물과 무기물안에도 우주생명이 살아 있음을 인정하고 공경함으로써 생태계의 균형을 새롭게 회복할 수 있다. 참된 이기의 길은 이렇게 새롭고 독특하고 참된 이타의 길이 되는 것이다.
인간 안에 무궁하고 신령한 우주생명이 살아 있음을 알고 공경한다면 모든 사회관계가 바뀔 수 밖에 없다. 최고의 인간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므로 우선 교육이 바뀌어야 할 것이며 문화일반이 새롭게 변혁되어야 할 것이다. 제도와 법률, 정치, 경제가 차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 변혁은 젊은이의 몫이며 이 몫이 바로 새 문명의 창조다. 이 과정에서 창의력이 나오고 자발적 협동심이 나올것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개성이 존중되며 깊은 우애를 지닌 공경의 공동체, 그것이 젊은이가 참된 이기를 통해 창조해야 할 사회이며 꽃 한송이,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와도 교감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친교의 세계, 이것이 젊은이가 개성화에 의해 회복시켜야 할 자연이다. 이것은 곧 시인의 사회이며 새 문명의 모습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기 안에 있는 우주의 독특함을 가르쳐 줄 수 없다. 자기가 찾아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찾아야 한다. 찾지 않으면 삶답게 살 수 없다. 절체절명이다.
○변혁은 젊은이 몫
개성화의 길은 다양하다. 선도 있고 정신분석이나 기도나 명상도 있다. 그러나 바쁜 현실에서 시도하기가 어렵다. 무시선, 무처선, 사사불공, 처처불상이라는 말을 한번 음미해보자. 삶을, 생명을 귀하게 알고 그 전체적 관계와 순환성, 다양성, 창조성을 생각하며 삼라만상을 공경하는 곳에 명상이 있다.
밥 한 그릇, 물 한 잔, 숨 한번에 우주가 순환한다. 짧은 대화와 풋내나는 사랑에서 역설적이게도 자기를 발견할 수 있으며 자기가 독특하게 세계와 관계하는 우주적 생존임을 깨칠 수 있고 안팎의 다양한 역설적인 체험에서도 생명생성의 진면목에 이를 수 있을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화, 새 문화, 젊은이들에 의한, 젊은이를 위한 새로운 생명문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새로운 생명문화의 창조, 풍류의 창조적 부활, 이것이 젊은 이기주의자 X세대의 불확실성의 내용이 아닐까? 탁월한 이기주의에 의한 속물적 이기주의의 극복이야말로 생명문화의 핵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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