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 다 잘려 나간 고목 한그루, 고장난 고물차 한대, 그 사이에서 오랜만에 해후하는 떠돌이 사내 둘. 극발전연구회가 강강술래 극장에서 공연하는 「색시공」의 풍경이다. 배우들이 중심인 극발전 연구회가 20여년전에 쓰여진 「색시공」을 되살리는 것은 작품속의 인물들―황포와 갈포―이 배우라면 탐을 낼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번 공연에서 배역을 맡은 전무송과 최종원은 때로는 상대방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때로는 어루만져 주면서 장난기 넘치는 소년같은 모습과 허허로운 중년남자의 모습을 넘나드는 역할을 능란하게 연기한다. 그들의 매력은 이번 공연을 지탱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배우들을 채워주어야 할 희곡의 의미를 깊이있게 해석하는데는 소홀하여 극의 균형이 깨어진 감이 있다.
1974년 유신정권하에서 신문기자였던 장윤환이 쓴 「색시공」은 인간신념의 허구성을 보여주면서 독재체제를 풍자하고픈 속마음을 담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당시의 관객들은 무대위의 상황에 나름대로의 시사성을 가미해 은밀한 교감을 하였고, 그들을 둘러싼 탄압적 분위기는 극의 내용에 긴장감을 더 해 주었을 것이다.
정치적 상황이 달라진 오늘날 「색시공」은 정치적 은유를 뛰어넘어 20년후의 관객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원작에 그 가능성은 잠재되어 있다. 사이비교주 추종자 황포와 갈포는 가치기준이 흔들리고 미래가 불확실해진 요즘 아무것이나 믿고싶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 마지막 장면에서 연출 서충식은 그런 모습을 얼핏 드러내고 있다. 차는 고쳐졌지만 막상 갈곳은 분명치 않은 막막함을 드러내는 두 배우의 표정이 인상깊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전반적으로 원작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삶의 부조리한 측면을 캐기보다는 배우들의 개인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색 김진희는 두사내가 떠돌던 중 배우가 되었다고 설정하고 배우생활의 에피소드들을 삽입했다. 배우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전무송과 최종원은 극중인물을 벗어나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부분에서 극적 긴장감은 풀어지고 극의 범위는 두 배우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축소된다.
좋은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와 어우러지는 호흡이 돋보이는 「색시공」, 그러나 그들에게 생기와 도전을 주기에는 너무 희석된 주제와 단순한 대사로 인해 배우들이 헛헛해 하는 모습이 때로 엿보인다. 문득 멋있는 포장지로만 겹겹이 채워진 선물 상자를 연 느낌. 있는 듯하나 없는 것을 스치는 손길의 허전함이 느껴지는 무대다. 색즉시공.<연극평론가>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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