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가을 미국여행중 한 사립대총장과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학총장의 권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총장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별 망설임없이 『권위는 행정능력에서 나오는것이며 총장은 대학경영자』라고 대답했다. 좀 싱거운 느낌이 들어 그가 전화를 받으려고 나간 사이 다른 사람들에게 『저 분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총장이냐』고 묻자 한 교수가 『왜 묻는지 안다. 한국은 지금 총장선출문제로 시끄럽지 않느냐』면서 한국식 기준으로 인기를 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 무렵 우리의 대학은 총장선출문제로 교수사회에 파벌이 생기고 학내 구성원간의 이해가 엇갈려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지금은 총장선출문제보다 대학평가인정제, 교수업적평가제, 대학간 학점인정제, 외국대학과의 교류등 대학경쟁시대를 맞아 교육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훨씬 더 다급한 상황이 돼버렸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 가운데 두드러지는 변화는 총·학장 모셔오기이다. 대학을 위해 일할 수 있고 사회적 영향력도 큰 분들을 학벌과 출신대에 관계없이 영입하는 대학이 많아졌다. 호남대는 문교부관리를 거친 전체신부장관 이대순씨, 전주우석대는 서울대교수였던 김종철씨, 영동대는 국졸이 최종학력인 고교교장출신 김재규씨, 부산외대는 서울대총장을 역임한 박봉식씨를 총장 또는 학장으로 맞아들였다. 지난해 11월 충북대교수들은 결선투표끝에 낙선하기는 했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대환경대학원의 권태준교수를 총장후보로 추대했었다. 최근에는 명지대가 전서울시장 고건씨를 총장으로 맞아들였다. 고씨는 『대학총장은 학문의 뒷받침을 해주는 사람이다. 나는 세일즈맨총장이 되겠다』는 말로 총장상의 변화를 잘 대변하고 있다.
달라진 총장의 모습은 대학의 경영개선에 이바지하겠지만 「세일즈맨」으로서 살림을 늘려가는 일 때문에 학사운영의 자율을 확충해 나가는 일이 뒷전으로 밀리거나 방해받아서는 안될것이다. 대학경영자인 총장은 당연히 정부나 교육당국과의 관계에서 자율을 지켜가야 하며 다른 대학이나 학부모, 사회등 교육소비자들과의 관계에서도 교육의 독자성,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힘써야 한다.
교육부는 96학년도부터 정원조정권, 학생선발권, 교육과정 편성·운영권을 대학에 부여키로 했다. 구태의연한 권위나 학식, 모호한 덕망에 연연하지 않는 새 총장상이 이런 계기를 맞아 대학자율경영의 확립으로 개화하기를 기대한다.<기획취재부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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