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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정신을 되살리자(김지하칼럼/살림의 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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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정신을 되살리자(김지하칼럼/살림의 길:1)

입력
1994.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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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21세기 밝혀줄 생명회복의 목소리/인간·우주·자연합일의 「한살림」사상/경쟁력핵심 창의력·협동심 배양원천/멋과 흥의 생활화통해 혼돈시대 극복을/문화·교육이념 기우는 서양정신보다 우리전통에서 찾아야 「국제화」「국제경쟁력 강화」를 외치는 소리가 드높다. 너나없이 입만 열면 그 소리다. 바야흐로 전 지구적 규모의 무한경쟁시대, 이기지 않으면 살길이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죽기 아니면 살기」다. 심지어 문화에도 경쟁력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토론에 나와 교육에도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와 교육에서도 과연 그래야만 할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황량해질까? 사정이 급하긴 급하다. 그러나 급하면 돌아가라는 말도 있다. 좀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닐까?

 개방과 지구화는 세계사의 필연적인 대세다. 나는 한말의 척사위정과 같은 폐쇄적인 주체사상에는 반대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세계사의 흐름속에는 역설이 관통하고 있다. 「글로칼리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구화와 지방화, 통합과 탈통합, 평형과 비평형, 개방과 주체가 동시에 요청되고 지구적 기동성과 지역적 정착성이 함께 요구되는 때가 바로 현대다. 역설은 삶과 생명의 특징이다. 그래서 현대를 생활자의 시대, 생명의 시대라고 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고 외치고들 있는데 참으로 살고자 한다면 이같은 다양한 역설적인 생명의 원리를 잘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지름길이다. 이러한 생명의 원리를 우리의 전통적인 사상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인가?

○동양사상에 출구

 경쟁력이라고들 말하지만 경쟁력의 핵심이 무한경쟁 그 자체인가? 사실 경쟁력의 핵심은 「경쟁인간」을 육성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과 협동심」이 있는 인간을 육성하는 데에 있다. 일본 쓰쿠바대학의 에사키총장은 창의력 있는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집단주의와 복종을 강요해 온 「화혼」 즉 일본정신을 포기하고 개인주의를 가르치는 서양정신으로 교육이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일본대학들도 다투어 에사키노선을 뒤쫓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들도 그런 일본을 뒤쫓아 갈 추세다. 교육의 방법과 경험을 배우는 것은 좋다. 그러나 문명의 대세가 동북아시아로 중심이동하고 있는 이때에, 서양의 지식인 과학자들이 앞다투어 동양의 전통사상으로부터 새로운 정신의 출구를 찾고 있는 이때에 경쟁력이 시급하다고 해서 이미 기울고 있는 서양정신에서 대안을 찾고 있는 일본을 깊은 생각없이 뒤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창의력과 협동심을 원천적으로 양성하는 이념을 우리의 전통사상안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인가? 우리민족의 근원적인 삶의 사상을 이어받으면서도 외래의 훌륭한 문화를  잘 섭수하여 독창적인 자기실현과 이웃과의 협동, 그리고 나아가 자연과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창조적인 문화와 교육이념의 지평은 없는 것인가?

 우리사상의 근원은「풍류」에 있다. 최치원은 란랑비서에서 「국유현묘지도왈풍류···포함삼교 접화군생」이라고 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한다. 유불선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과 접촉하여 이를 감화시킨다」는 뜻이다. 유불선을 모두 포함했으니 유교의 복례와 불교의 일심과 선교의 무위자연을 다 갖추었으며 그 핵심이 하느님과의 합일에 있으니 또한 기독교도 포함한다. 군생을 감화시킨다 했으니 인간과 천지의 일체중생을 모두 살리고 화해시키는 사상이다. 풍류는 모든 훌륭한 외래사상에 대해 개방적이면서도 우주와 인간의 합일, 모든 인간과의 협동, 자연과의 화해를 중핵으로 하고 있다. 유동식선생은 풍류정신을 「한, 멋, 삶」으로 요약한 바 있다. 「한」에는 「하나」「하늘」「우주」「크다」「바르다」등의 뜻이 있고 「멋」에는 흥과 율동, 조화와 자연스러움, 자유와 내실등의 뜻이 있으며 「삶」에는 생명이라는 생물학적 개념과 살림살이라는 사회적 개념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요즘말로 간단히 요약하면 「한살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살림」은 인간 안에 살아 있는 「한」 곧 무궁하고 신령한 우주생명을 자기공경을 통해 살리는 것이며, 이웃 인간 안에 살아있는 「한」곧 우주생명을 이웃공경을 통해 살리는 것이며, 동식물과 무기물등 모든 자연 안에 살아있는 「한」곧 우주생명을 자연공경을 통해 살리는 드넓은 살림살이인것이다.

 그러나 「한」은 또한 「하나」를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독창적 개체성을 최고로 존중하여 살리는 개성화, 개별화, 개체실현과 다양성의 살림이면서 동시에 「한가지」로 아우르는 연대의 살림이다. 「한」은 「큰 우주」이면서 「작은 개체」이므로 인간과 뭇생명안에 살아있는 전체와 개체를 함께 살리는 역설적 살림살이이기도 한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살림에서 비로소 「한」곧 신명이, 신바람이 살아 일어난다.

 지구화와 지역화, 창조적 개성과 공동체적 협동이 함께 요청되는 현실에 대한 절실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풍류정신은 동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안으로 신령한 우주가 있고 밖으로 기화(협동, 사회화)가 있으며 한세상사람이 서로 떨어져 옮길 수 없음을 각각 깨달아 실천한다는 「모심」과 「공경」의 이치안에 「한살림」의 이념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더욱이 불연기연, 「아니다, 그렇다」의 독특한 역설적 진화논리는 절실한 생명의 문법이다.

 그러나 우주와 인간의 합일이나 사회 및 자연과의 화해의 사상, 그리고 역설의 논리가 풍류나 동학에만 있다는 말은 아니다.「포함삼교」라 하지 않았던가! 화엄사상이나 선, 원효의 화。, 역학과 기학, 그리고 노장사상안에 널리 포함되어 있는 그러한 사상이 풍류와 동학 곧 「한살림」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이 핵심사상을 중심으로 이어받아 중창하면서 유불선 삼교와 기독교를 오늘의 요청에 따라 새롭게 해석하며 서양의 여러 문화 및 과학사상과 교육경험을 잘 걸러서 섭수하는 곳, 그곳에 새로운 문화와 교육이념의 근거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더욱 큰 한살림이 아니겠는가! 일본인처럼 자기네 전통사상이 빈약하여 문화와 교육의 이념까지 서양에서 빌려오려는 태도를 무작정 흉내낼 일이 아니다.

○생명정치 이끌어

 21세기는 생태학의 시대다. 서양의 환경운동은 생태학적 논쟁에 몰두하고 있다. 논쟁과 갈등의 핵심은 환경개량주의의 인간중심주의와 근본생태학의 생물중심주의, 그리고 이 양자를 함께 극복하려는 사회생태학 사이의 논쟁이다. 근본생태학이 환경개량주의를 비판하고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주장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합일을 정치의 장으로 이끌어내려 할 때 인간을 생물종으로만 파악하는 자연주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인간의 문화와 우주자연을 합일시키는 새롭고 창조적인 인간의 재규정이 필요한데 서양사상사에는 그러한 전통이 빈약하다. 이것을 극복하려는 사회생태학의 노력은 전통의 결핍으로 힘겨운 느낌이 든다. 인간이 자기안에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을 모시고 있어 우주진화와 자연사가 모두 인간안에 살아 생성하고 있다는 풍류의 「무궁인간」「우주인간」으로서의 인간관, 인간규정은 생명정치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것이며 또한 풍수학과 관련된 동양정치의 전통도 이 점에서 풍부한 시사를 주고 있다.

 21세기는 창조시대다. 정보화에서 창조화로, 컴퓨터에서 컨셉터(창조적 발상지원시스템)로 데이터에서 아이디어로, 비트에서 창발량으로, 경제력에서 문화력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때이다. 인간의 창조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문화의 핵은 또 무엇인가? 영성과 각성이다. 창의의 근원은 영성적 자기성찰에 있으며 명상이나 선과 같은 개성화의 노력에서 최고의 창조력이 발현된다. 21세기에는 브레인 스토밍과 같은 쥐어짜기식 정신학대로 소모적 창의력을 요구해서는 안될것이며 개성화 곧 견성을 향한 다양한 노력으로부터 창조력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할 것이다. 개성화한 인간은 자기안에 독특하게 살아있는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를 인식하고 공경하여 이에 일치하는 인간이며 그 우주의 역설적인 생성을 날카롭게 체험하는 영성적 인간, 각성적 인간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우주적 상상력으로 멋진 개성적 새 세계를 창조한다.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온전히 살려내는 문화와 과학적 법칙과 생태적 기술을 창조, 발견, 창안해 낼 것이다. 풍류의 멋에서 드러나는 흥과 율동, 조화와 자연스러움, 자유와 내실의 문화는 황폐한 우리의 삶을 살리고 인류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줄 것이다. 

 21세기는 자치시대다. 지구화와 함께 지방화, 지역분권이 철저히 전개되는 시대다.  지역자치, 주민자치는 최고의 인권을 요구하며 생활자주권을 확립시키는 진정한 민주주의다. 자치는 최고로 개성화된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인간과 상호공경의 새로운 공동체와 환경문제를 원칙적으로 해결하는 성숙한 우주적 책임감 곧 깊고 넓은 생명윤리를 요구한다. 「자치인간」은 「풍류인간」인 것이다.  21세기는 통일의 시대다. 민족은 통일될 것이다. 그러나 국토와 제도의 통일만으로 통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통일정세의 고조와 함께 남북에 커다란 삶의 혼란이 올 것이다. 분열된 삶의 보편적 통합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심리의 통합과 삶의 연대협동이 전제된다. 사상의 통합, 남북주민의 상호공경과 연대를 가능케 할 사상적 화。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북쪽의 주체사상 안에는 비록 낡았으나 생명론의 한 근거가 있으며 동학의 인간관이 포함되어 있다. 풍류와 동학과 한살림사상의 창조적 해석과 그에 기초하는 문화와 교육이념은 지금의 폐쇄적 주체사상을 해체하면서 개방적 주체로,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보지 않는 우주적 주체로, 수령론이 없는 만인주체의 살림의 사상으로 다시 건져낼 것이다. 

○동서세계의 통합

 21세기는 역설의 시대다. 21세기 사상계에는 인간생명과 자연생명의 깊은 곳으로부터 찾아지고 우러나오는 다양한 법칙, 불가사의하고 역설적인 새로운 과학과 논리의 세기가 될 것이다. 이미 관찰자참여의 우주론이나 불확정성원리 , 혼돈의 과학, 복잡성의 과학, 유연성의 과학등이 그 조짐이다. 이 모든 사상은 논리적으로는 역설적 표현을 띤다. 세계사의 역설적 전환이 또한 그 조짐이다. 명상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마음의 생성이 얼마나 역설적인지를 안다. 「역설의 생활화」는 고승대덕이나 성자들만이 논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범부중생도 일상적으로 깨닫고 실천하지 않으면 살림을 살 수 없게 되었다. 달이 손가락을 가리키는 셈이다. 자기 안팎에서 역설적 생성을 체험하고 실천하는 인간만이 창조적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말, 우리글, 민요와 판소리등 전통문화와 풍류사상에 풍부히 잠자고 있는 생동하는 역설적 표현을 되살려 새롭게 생활화해야 한다.

 21세기는 살림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 자기자신과 이웃인간, 자연과 우주를 모두 살리며 빛과 어둠의 양극을 합일하여 함께 살리는 드넓고 깊은 한살림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 풍류의 생명사상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과학과 문화를 창조적으로 통합하는 진정한 한살림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인간소외와 착취와 경쟁과 약육강식의 대명사로 불렸던 시장도 고대문명의 창조적 회복과 더불어 그 본래의 모습을 되살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신령한 시장」「신시」로 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살림, 한살림이 민초들의 일상적인 살림살이가 되어 일상생활의 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살림, 이것은 혼란스러운 개방시대, 통일시대에 대응하는 우리의 철학, 가치관, 우리의 문화, 우리의 교육이념이 되어야 한다. 풍류가 새롭게 되살아나야 할 때다. 광범위한 생명운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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