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제재땐 「경제 영향력」행사/대등한 경협-문화교류 등 거론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총리는 24일 하오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양국의 협력방안과 동북아지역에서의 역내 역할분담등에 관해 논의했다. 이날 회담은 김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간에 세번째의 대좌이지만 북한핵문제와 관련된 최근의 국제정세로 말미암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 진지한」분위기 속에서 회담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양국정상회담은 당초의 주요현안이었던 경제협력문제보다 북한핵과 관련된 한반도상황과 동북아정세쪽에 비중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핵문제가 「국제적 공조에 의한 대북제재」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북한의 핵개발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돼야 하며 한반도의 긴장 역시 어떤 일이 있어도 고조돼선 안된다』는 한일양국간의 공감대확인이 효율적인 국제적 공조를 위한 일차적 단계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한일양국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이같은 「일차적 공조」를 확인하면서 한일간협력의 긴밀함이 오는 28일로 예정된 한중정상회담의 결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데도 인식을 함께 했다. 북한에 대한 유엔차원의 제재가 가시화될 경우 일본은 중국과 함께 제재의 효력을 직접적으로 담보할수 있는 국가이며 따라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양국간의 역할분담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일본으로서는 대북 경제적 영향력을 충분히 활용할수 있다는 점이다.
호소카와총리가 이날 회담에서 자신이 최근 내각에 지시했던 「대북경제제재조치 준비」의 내용을 김대통령에게 설명하면서 그 이행을 확약한 대목이나 북한핵문제가 해결되기전에는 북·일간에는 그 어떠한 수교협상도 시도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한 것은 이같은 「역할분담」의 일환으로 보아진다.
김대통령이 이날 북한핵문제가 유엔차원으로 넘겨질 경우 일본의 협조를 당부하자 호소카와총리가 북한핵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은 한국이상의 이해당사자임을 강조하며 적극적 「동반자관계」를 강조한 대목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호소카와총리는 일본의 이같은 입장을 설명하면서 스스로 북한핵문제해결을 위해 중국측에 영향력행사를 요구하겠다고 말한 것은 북한핵문제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동북아 전체의 안보 및 평화와 직결돼 있다는 공동인식을 확인한 부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일양국은 그러나 북한핵문제와 관련된 대화의 수단이 아직까지 완전히 소진되지는 않았다는 데 공감하고 제재를 위한 국제공조체제 강화와 함께 새로운 협상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도 동시에 모색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는 한일경협과 관련, 기존의 협력채널을 더욱 확대하고 다양화함으로써 획기적인 경협관계를 다지기로 했다. 그동안 한일경협모델은 「과거사」라는 걸림돌 때문에 대등한 협력관계라기보다 주고받는 식의 협조체제가 대종을 이뤄왔던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호보완과 협력관계」가 명실상부하게 뿌리내리게 될 것으로 양국관계자들을 전망하고 있다. 정상회담이 끝난뒤 정부의 한 관계자가 『이번 회담을 통해 양국의 무역불균형이나 기술협력문제등 오랜 경협현안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차이를 해소했다는 것이 큰 성과』라며 『시혜와 수혜, 갈등과 대립이라는 기존의 틀이 앞으로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밝힌 점은 음미해볼만한 대목이다. 다만 이번 회담에서 북한핵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각되면서 경협과 관련된 구체적 협의가 우리의 「희망」만큼 진행될수 있을 것인지는 오는 26일 열리는 확대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같다는 지적이 있다.
양국정상은 이밖에 한일간의 문화교류등에 대해서도 깊숙한 논의를 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대통령이 한일대중문화교류에 관심을 표명했고 호소카와총리역시 그 필요성을 밝힌 점은 향후 한일문화교류와 우리 문화재의 「반환」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는 후속논의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남기고 있다. 또 사할린 한인문제에 대해 포괄적 해결방안을 마련키로 했으며 종군위안부문제에는 새로운 보완조치를 협의키로 한 대목도 이같은 「미래를 위한 교류」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날의 한일정상회담은 북한핵문제라는 새로운 현안에 대한 양국 새정부의 첫 정책조율이라는 점과 기존의 현안에 대해 한차원 높은 협력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21세기를 위해 새옷을 입고 새 단추를 끼워 넣은 정상회담이 되었다』는 공통된 평가를 이끌고 있다고 보아진다.【도쿄=최규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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