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도 그 소리는 남아…/이화중선등 12명 판소리 “부활”/해방전 도넛판 CD에 재수록 20세기 전반기를 살다 간 여류명창 이화중선(1898∼1943)의 삶은 한편의 영화와 다름없다. 소리 고을 남원의 혼인한 아낙이었던 그는 어느날 마을을 찾아온 협률사의 소리 구경을 한 뒤 무작정 가출하여 소리꾼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당시 여자 소리꾼이라면 물론 기생이었다. 곱고도 슬픈 소리, 아무리 어려운 고음도 쉽사리 뽑아내는 그의 목은 금세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인기도 덧없이 그는 1943년 한국인 노무자를 위로하기 위한 일본 공연을 떠났다가 규슈에서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다. 일제 강점기 최고 여창에게는 너무도 어울리는 극적인 죽음이었다.
<사람이 살며는 몇 백년이나 사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 뉘라 노소 있느냐> 하고 육자배기 가락을 뽑아내는 이화중선의 목소리는 곱고 슬픈 정도에서 지나쳐 처연하고 모골이 송연한 느낌마저 준다. 도넛판(SP)으로만 남아있는 이화중선의 「몽중가」 「홍보 박 타는데」 「용왕 탄식하는데」「육자배기」등이 CD판으로 복각되어 나왔다. 사람이 살며는 몇 백년이나 사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 뉘라 노소 있느냐>
고음반 복각작업을 계속 해 온 신나라 레코드사에서 펴낸 「판소리 여류명창들」시리즈(전 4장)는 이화중선말고도 그와 쌍벽이던 당대의 여창 배설향 신숙 김초향과 최근까지 활동한 박록주(1906∼1981) 오비취(1918∼1988), 지금도 활동중인 김소희등 여류명창 12명이 해방전에 도넛판에 녹음한 소리를 재수록했다.
이 가운데 배설향(1895∼1938)은 남원 출신으로 장판개에게 사사했는데 곱고 시원한 목소리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등과 같이 협률사 활동을 잘 했으며 창극 「심청전」과 「춘향전」에서 심청과 춘향역을 도맡으며 이화중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가장 고운 목소리를 뽐냈던 가수로 알려져 있다.
특이한 것은 이번 음반집에 수록된 여창들의 목소리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곱기보다는 힘차다는데 있다. 이 가운데 김초향 권금주 신숙의 소리는 특히 꿋꿋하고 당당해서 남성적 매력까지 느끼게 한다.
이번 복각 음반의 해설과 주석을 맡은 최동현교수(군산대 국문과)는 『이 음반에 수록된 작고 명창들은 신재효 송만갑 이동백 정정렬등 1세대 소리꾼과 지금의 원로 소리꾼들을 잇는 2세대 소리꾼들인데 담백하고 씩씩한 예스런 소리가 특징이다. 이들이 소리를 한 시대는 판소리가 남성의 전유물에서 여성 동참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으며 이들이 바로 그런 변모를 가져온 목 좋은 소리꾼이었다』고 평한다.【서화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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