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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민요/말못할 구박·설움 노래에 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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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민요/말못할 구박·설움 노래에 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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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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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추 당초 맵다한들 시접보다 더맵겠나”/한맺힌 사연 구구절절… 가락은 지역마다 제각각 남녘은 완연한 봄이다.

 길가의 버드나무는 물이 올랐고 산수유는 노랗게 피었다. 쑥과 냉이는 언덕마다 부옇게 덮였고 목련과 벚꽃은 곧 벌어질 듯이 꽃망울이  잡혀있다.

 무엇보다 농부와 함께 밭갈이하는 소의 체취 속에서, 그리고 소가 지나가는 이랑마다 푸덕푸덕 부드럽게 갈려나가는 땅에서 진하게 봄이 느껴진다.

 시집살이 노래를 들으러 찾아간 경남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개화 마을도 언덕배기 사과나무 거름을 주랴, 밭에 퇴비를 붓고 객토를 하랴, 남녀노소가 달려들어 부산했다.

 시집살이 노래는 사람이 발붙이고 살았던 전국 어디에나 있다. 지역에 따라 강원도는 자진아라리 가락으로, 경상도는 어산영가락으로, 전라도는 메나리조로, 그 지역의 독특한 민요음조에 붙여 부르는 것이 다를 뿐 가사도 비슷하다.

 가락이 아니라 가사맛으로 부르는게 시집살이 민요의 특색이다. 가사는 곡절많은 시집살이의 내력을 소설 한 편이라도 됨직하게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성님 성님 사촌성님 시접살이 어떻던가. 꼬추 당초 맵다한들 시접보다  더맵겠나. 반일러라 반일러라 눈물닦기 반일러라 >

 하고 많은 곳 가운데 굳이 경남과 경북, 전북의 인접지역인 거창을 찾은 것은 그곳에 바로 「1시간 짜리 긴 시집살이 서사민요를 부르는 전승자가 있다」는 기록 때문이었다. 또 산골이나 바닷가처럼 지역이 외질수록  시집살이 노래는 처량한데, 거창이 그러한 오지라는 점에도 이끌렸다.

 그러나 1시간짜리 시집살이를 들려주던 주필득할머니는 지난해 89세로 타계했다. 그 대신 그 할머니가 살던 거창읍 가지리에는 「가지리노모회」라는 부녀모임이 매주 모여 민요를 부르고 있었다. 옛 노래가 불리던 곳이 민요가 살아나는 새롭고 고마운 현장이 된 것이다.

 가지리노모회는 거창읍의 북쪽 마을인 가지리 개화부락 부녀회의 원로조직으로 59세부터 77세까지 5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25명이 매주  두세차례 노인정에 모여 민요를 부른다. 시집살이 민요를 구성지게 부르는 이들 자신이 이제는 모두 시어머니들이다.

 시집살이의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픈 것. 특히 혹독한 노동 뒤의 배고픔은 설움이 더하다.

 <시접가던 샘일만에 밭이라꼬 매라하니 한골매고 두골매고 삼사골을 매고 나니 점심때가 늦었구나. 집이라꼬 찾아오니 원수놈의  시오마씨(시어머니) 에라요년 요망한년 그걸싸 일이라꼬 시를 찾고 때를 찾나. 밥이라꼬  주는 것이 사발가에 볼라주네. 반찬이라 주는 것이 접시가에 볼라주네.  숟가락이라 주는 것이 변소가에 던지주네>

  『쌀 요만큼 주면서 밥 하라 그래요. 밥 끓으면 누룽지 두고는 다 퍼가고 된장 끓인것 톡 퍼가고 그 자리에 물하고 소금하고 담아줘요. 그걸 끓여 부엌에서 먹었어요. 고추장도 한번 못 떠먹어요. 일을 해도 밥이 보이고, 꿈을 꿔도 밥이 보이고』

 노모회의 소리꾼인 이말주씨(62)는 옛날 시집살이를 말한다. 

 더욱 괴로운 것은 구박과 차별대우이다.

 <밥바꾸리 옆에 두고 생배 골은 내 설움아 양념단지 옆에 두고 맨밥 먹는 내 설움아>  (무안 둥당애타령)   <우리집에 클 적에는 찰떡도 띠긴데 너거 집에 오니께루 개떡도 반쪼가리>   <다믄다믄 다섯식구 나하날싸 남이라고 나안먹은 붕어고기 날 먹었다  탓이로세. 시누이가 딴 복숭아 날땄다고 탓이로세>  

 친정을 생각하면 눈물이 더 난다. <울 어매는 날 날 적에 감감초를 원했던가. 살아갈수록 감감하네. 울 어매는 날 설 적에 왕대 죽신을 원했던가. 매디매디도 설움이네> (광양 신세타령) 

 이런 설움의 주인공도 자신이 친정에 있을 때는 혹독한 시누이였다. 그래서 시집살이 어려움을 편지로 친정에 부쳤더니 올케가 듣고 <간장에다  처넣을  년아 된장에다 박을 년아, 너도 간께 그러디야 나도 온께 그러드라> (영광 시집살이 노래)며 춤을 추더라는 가사도 있다.

 1시간 짜리 시집살이 노래는 시집과 친정 어디에도 발 붙일 곳 없는 민요의 화자가 중이 되어 떠나간다는게 줄거리이다. 죽음으로 항거하는  가사나, 처녀 때로 돌려주면 시집 말대로 듣겠다는 당돌한 시집살이 노래도 있다.  

 민요인데, 시집살이 노래라고 해학이 빠질 수 없다. <나는 체에다 불을 담았더니 그것도 숭일레라. 여보게 말도 말게 나는 시아버지 이마에다 칼자루를 박았더니 그것도 숭일레라. 숭도 많고 말도 많은 그 시집을 어찌  살꼬>

<시집살이 못했으면 영 못했지. 오강 양푼 뚜드리서 엿 사먹지> (상주  시집살이)

 경상대에서 구비문학을 가르치면서 경남 민요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박성석교수(48·국문과)는 『원래 시집살이 민요는 흥얼흥얼 읊조리듯이 불렀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창부타령이나  노랫가락류가 많이 나온다』고 노래형식을 풀이해준다. 

 들로 나온 가지리노모회 회원들 입에서는 시집살이 노래가 절로  나온다. 

 <시오마씨 죽고서 방 널러 좋네. 동네 한량들 다 오니라. 동네 한량들 다 오라꼬 다 오지 말고 군청서기 니 하나만 살짝 오니라. 시오마씨  죽고나니 꼬추장단지도 내차지. 시오마씨 죽고서 좋다 했디만 보리방아 물 부놓고 나니 생각나네>  

 이제는 시어머니가 된 이들은 깔깔대며 시집살이 노래를 부른다.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살림살이가 한결 여유가 있게 되어서일 것이다. 서울에서야 이들 세대 쯤이면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며느리살이」가 있다지만 제 힘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구김살이 없다. 더구나 평생을 함께 부르며 설움을 삭여 온 즐거운 노래가 있지 않은가.<글­서화숙기자>

◎구비문학 수집가/박종섭씨/전국 누비며 민요·민담발굴 반평생… 테이프 2천개 분량 채록

 「경남 거창 가 3786」은 거창군내에서 가장 유명한 오토바이이다.

 거창의 민요와 전설을 수집하는데 20여년을 바친 박종섭씨(53·거창상고 국어교사)가 요즘도 매주 주말과 방학이면 이 오토바이를 몰고서 거창군의 산과 골짝을 훑고 다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채록한 민요는 테이프 2천개 분량이다. 이 가운데는 거창과 경남지역은 물론 경북 전북 경기의 민요가 포함돼 있다.

 경북 상주출신으로 거창고등학교를 나온 박씨는 가난탓에 31살인 72년에야 계명대 국문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거기서 조동일  서대석교수의 「구비문학개론」을 듣고 그 길로 민담과 민요 수집에 나섰다.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한국구비문학대계」의 거제 거창 선산 군위 달성지역 민담은 거개가 그가 채록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 어른이나 잡고 「소리 좀 들려달라」면 민요 한자락이 금방 나왔는데 요즘은 토속민요는 60대한테도 듣기 힘들어요』

 박씨가 민요수집을 시작한 시기는 새마을운동이 거세게 일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가 찾는 민속과 민요는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급속히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그는 『박정희대통령이 경제는 살렸다지만 왜놈들도 없애지 못한 우리 민속을 깡그리 없앴다』는 극언도 마다않는다.

 박씨는 84년에 거창상고에 농악반을 만들어 풍물을 보급했으며 87년에 「거창 향토민요·민속보존회」를 만들어 민요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지도로 「거창 삼베일소리」를 익힌 거창의 부녀소리꾼들은 9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았다.그들 대부분이 가지리노모회이다. 그는 『민중의 삶이 담긴  토속민요 발굴과 보급에 정부가 너무 인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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