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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백년의 교훈(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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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백년의 교훈(사설)

입력
1994.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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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가름하는 동학혁명이 20일로 1백주년을 맞는다. 이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1894년 3월20일께 전북 무장에서 기포, 본격적으로 반정 반외세 행동에 나선것을 기점으로 한것으로 천도교는 21일부터 탑골공원등에서 그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식및 행사를 갖는다. 이번 기념행사를 계기로 그동안 식민사관등에 억눌려 그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동학혁명에 대한 연구 조사 토론등이 보다 활발해질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역사상 동학혁명만큼 큰 획을 그은 사건도 드물다. 가장 큰 민초들의 함성이었다. 이 함성은 한반도 전역에 메아리쳤을 뿐만아니라 청일전쟁으로 이어지는등 동북아를 뒤흔들어 우리가 20세기를 시련속에 맞아야 했던 큰 원인이 됐다. 그만큼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깊었다. 지금도 근대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수 없을 만큼 역사의 구석구석에 그날의 피맺힌 함성이 어려 오늘의 산 교훈이 되고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학혁명은 19세기후반 외국상품이 물밀듯이 들어와 화폐경제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집권층의 탐학등에 시달리던 농촌경제가 붕괴된 사실이 그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집권층의 무능과 부패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사회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계속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소용돌이치는데도 집권층은 사리사욕을 채우는데만 눈이 어두웠던것으로, 오늘의 우리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게 만든다.

 동학혁명은 이같은 집권층의 부패및 무능과 외세에 맞서 일어선 농민봉기였다. 성격규정에선 이를 단순한 농민봉기로 보는 측이 있는가 하면 근대화의 흐름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혁명으로 보는 의견도 많다. 그 성격은 앞으로 조명해야 할 과제지만 30만명 가까운 농민이 관군과 일본군대의 총칼에 피를 뿌렸던 발생배경과 원인, 그 결과만은 곰곰이 되십어 그 교훈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현재 한반도 주변정세는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1백년전과 흡사한 점이 너무 많다. 국토가 남북으로 갈린것만 다를뿐 1백년전처럼 미 러 중 일등 4대강국의 관심이 한반도에 쏠리고 있다. 특히 북한핵을 둘러싼 요즘의 급박한 정세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농촌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체결후 그 옛날처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것도 비슷하고 국제화시대란 이름아래 유형 무형의 압력이 거세진것도 같다.

 정부나 국민 모두 이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1백년전의 아픔을 떠올려 불행이 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새로이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혁을 통한 부패척결등 우리사회를 보다 맑게 만들고 힘을 길러야 한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념하는 데만 의의가 있는것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거울로 삼는데 더 큰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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