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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과 인권/박찬식(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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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과 인권/박찬식(메아리)

입력
1994.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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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은 국가의 신용을 상징한다. 국민의 민도를 재는 척도가 될 때도 있다. 외국의 공항이나 항구에 내려서 입국창구에 여권을 내밀었을 때 창구직원의 취급태도는 그 여권을 발행한 나라의 국민이 자기 나라에서 얼마나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2차대전의 패전국 일본이 50년만에 강대국으로 국제무대에 재등장하게 된것은 일본상인이 세계 어느 곳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데서도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온 세계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으르렁대고 있는 동안 일본상인은 미국인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공산국가에도 일본여권을 들고 들어가 트랜지스터를 팔 수 있었다.

 일본여권이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유지해 온것은 일본국민이 국내에서 먼저 그만한 대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군정이 끝난 후 한때 사회주의 정권이 성립된 적이 있고, 지금 호소카와의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정당 가운데 제일 큰 정당이 사회당일 만큼 일본인은 지난 반세기동안 거의 완전한 정치적 자유를 누려왔다. 정치범이나 양심범같은것은 없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군국주의 지배체제 아래서 혹독한 정치적 박해를 경험한것이 일본 사회를 한 단계 성숙하게 한 배경이 됐을 수도 있다.

 독재국가가 발행하는 여권은 입국창구에서만 푸대접을 받는것이 아니다. 그 여권을 가지고 여행하는 나라 안에서도 그 나라에 주재하는 본국 외교관의 간섭을 받아야 한다. 독재국가의 해외대표부는 흔히 주재국을 여행하는 본국 국민을 보호하는 일 보다는 여행자들이 무언가 정권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까 감시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마련이다. 자기나라의 외교관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을 남의 나라 관리가 제대로 대접해줄 리 없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문민정부의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며, 그것은 인권의 완전한 신장과정을 의미한다. 인권이 보장된 사회에 사는 국민이란 집권세력으로부터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박해를 물리쳐 사람답게 살 권리를 획득한 국민이라는 뜻이다.

 지금 문민정부가 추구하는 「세계화·국제화」 역시 같은 길로 통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한국인이 그 나라의 입국창구에서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되는것이 구체적으로 「세계화」라고 한다면, 그리고 한국인이 세계인임을 알게 하자면, 한국정부가 발행하는 여권이 한국인의 용기와 위엄을 대변하는 훈장으로 인정될 만큼 국제사회에 신용을 쌓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보안법 개폐문제에 대한 미국측의 권고는 우정있는 충고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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