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비용규정 있으나마나… 최고 50억까지/20억미만쓴 여후보에 “아꼈다”/재력가 야후보도 10억대 보통 50억원은 어느 정도의 돈일까. 1만원권을 50만명에게, 10만원권 수표를 5만명에게 줄 수 있는 돈이다. 실감나게 표현한다면 한달에 1백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먹지도, 입지도않고 4백년간 모아야 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이 정도의 거액을 지난 14대 총선에서 한 후보자가 썼다면… 믿기지않는 가공의 이야기로 여겨질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50억원대를 쓴것으로 알려진 의원은 처녀출마를 했으나 여권내의 위상으로 중진에 맞먹는 대접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은 『약소하나 성의』라며 봉투를 내놓기 바빴다. 한 주변인사는 『돈푼있는 기업경영주들은 한장(1억원) 넘게 주었을것』이라고 말한다. 얼마가 모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의원측이 선거운동전에 마련한 자금운용 기본계획서의 총계란에는 「52억원」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서울에서 두 번 당선한 학생운동권출신의 원은 1억5천여만원만을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야당의원들은 대략 2억∼5억원의 돈을 썼고 수도권과 중부권에서 접전을 벌인 야당의 몇몇 재력가후보들이 10억원 정도를 쓴것으로 돼있다.
하지만 여권후보들중 20억∼30억원을 쓴 경우가 적지 않았고 국민당 후보들도 만만치않은 돈을 쓴것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당후보가 15억∼20억원대의 자금을 쓰면 『아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여기에다가 공천을 따내기 위해 동원되는 간접비용까지 합하면 소요자금은 훨씬 늘어난다. 무소속으로 당선된뒤 민자당에 입당한 어느 의원은 『직접비용은 17억원이었지만 민자당공천을 받기위해 6개월이상 공을 들인 돈도 상당한 액수』라고 밝혔다.
14대 총선후 한 경제연구소는 『후보자 1인당 평균 10억원』이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이를 근거로 하면 후보자 1천47명이 출마한 14대 총선에서 모두 1조5백억원이 동원됐다는 얘기가 된다. 역설적으로 선거자금이 극에 달했기때문에 이번에 통합선거법이 탄생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여야가 나름대로 『지킬 수 있다』는 전제아래 상한액을 5천3백만원으로 정했다면 과거에는 어떻게해서 그렇게 엄청난 돈이 들어갔을까.
그 이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된다』는 정글의 논리가 정치권에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때 강원지역에 파견된 여당조직국의 한 핵심요원은 『여당후보에게 10억원은 기본도 안된다』며 여당후보들의 조직가동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당의 지역조직은 「협의회장(동책)―투표구책―관리장(통·이책)―반책」으로 돼있다. 조직가동비는 선거기간중 평균 3차례 뿌려지는데 반책 3천명에게 한번에 5만원씩 주면 4억5천만원이 든다. 관리장은 5백여명으로 10만원이 기본이어서 선거기간중 30만원이 건네진다. 이 돈만도 1억5천만원이다. 협의회장(15명내외)은 대개 15명으로 50만원씩, 협의회총무(15명)는 30만원씩, 읍·면·동단위의 청년회장·여성회장(15명) 그리고 투표구(50명)책은 20만원씩 각각 세차례 받는다. 1억원쯤 된다. 다 합하면 조직비로만 7억원이 족히 들어간다』
그것만 들어가는게 아니다. 3종 홍보물에 6천만∼8천만원이 든다. 사진과 카피를 유능한 전문업체에 맡길 경우 1억원대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배포도 저절로 되는게 아니고 5천만원을 들여 자원봉사자들을 써야 한다.
관변단체에도 돈이 들어간다. 새마을단체 바르게 살기운동협의회등도 선거때면 여권의 운동조직으로 둔갑, 돈을 잡아먹는다. 대략 1억∼2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이 와중에서 유령단체들이 생겨나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대개 처음 선거를 치르거나 낙선의 고초를 겪은 후보자가 「먹이」가 된다.
호남지역에 출마했던 한여권인사는 「먹이」의 케이스를 증언한다. 『하루는 대학생연합회장이라는 복학생이 찾아와 돕겠다고 했다. 고맙다고 했더니 무려 1백여명이 몰려들었다. 3, 4일간 열심히 일하길래 수고비조로 5백만원을 주었다. 그 복학생은 「끝까지 도울테니 목돈을 달라」고 했다. 얼마인가 물었더니 1억원을 달라고했다. 거절하면 훼방을 놓을것 같아 깎아서 5천만원에 낙착을 봤다』
이밖에도 합동연설회의 청중 동원에도 돈이 든다. 일당 2만원으로 1천명을 동원하면 3번 연설회에 모두 6천만원이 필요하다. 정당연설회는 동원수가 훨씬 늘어나기 때문에 동원비 역시 1억원을 넘어선다. 여기에다가 사무실운영비 전화비 차량유지비도 적지않게 들어간다.
기초비용만 해도 10억원이 훌쩍 넘어 가 버린다. 만약 조직가동비를 조금만 여유있게 풀면 총액은 금방 20억원대에 육박해 버린다.
이에 반해 야당후보들은 상대적으로 자금사정이 나빠 주로 홍보물에 목돈이 들어간다. 조직가동비는 대개가 4백여명의 통책까지만 준다. 횟수도 두 차례정도가 보통이다. 그래도 3억∼4억원은 기본비용이 된다.
그렇다면 후보자들은 이돈을 어디서 조달하는가.
우선 중앙당의 지원금이 있다. 민자당의 경우 지역별로 4등급으로 분류, 대략 2억원에서 4억원의 돈이 지원됐다. 여기에는 대통령 하사금도 포함돼 있다. 중앙당 지원금부터가 법정선거비용을 초과하는것은 차라리 아이러니 이다. 당의 계파보스들이 조직관리와 자기사람만들기를 위해 5천만∼3억원의 돈을 지원 해준다.
이 정도 돈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다음은 개인차원의 자금 조달이다. 문중 동창 친척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돈을 줄만한 곳이면 손을 벌린다. 후보나름의 돈모으기 백태가 벌어지고 자칫 받아서는 안될 조건붙은 돈을 받아 당선후 시달리기도 한다. 그리고 정경유착이나 특정세력이나 집단과의 밀착이 선거때 받는 선거자금에서 부터 싹트기 시작한다. 돈안드는 선거가 깨끗한 정치의 시작임은 새삼 두말할 필요가 없다.【이영성기자】
◎어느 여당의원의 고백/14대 법정비용20배 23억써 「30당20낙」실감/조직가동비·청중동원비중 「중간누수」많아
앞으로도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간다면 차라리 정치를 그만 두고 싶다. 지난 14대 총선은 돈선거였다. 끔찍할 정도로 돈이 들어갔다. 1억3천여만원의 법정선거비용은 누구도 지키지 않았고 나도 23억원이나 썼다. 「30당20낙」(30억원 쓰면 당선되고 20억원 쓰면 떨어진다)이라는 정치권의 얘기가 크게 사실과 다르지 않다.
국민들은 법정선거비용액을 20배 넘게 썼다면, 놀랄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선거막판에 자금책으로부터 이미 20억원 가까이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그런 돈을 동원하고도 선거일 이틀을 남겨두고 돈이 바닥난 상태가 됐다. 협의회장들이 돈타령을 하자 그들 앞에서 울기까지 했다. 나의 울음은「절반 속마음, 절반 쇼」였다. 소문이 퍼져 유권자들의 동정을 유발했고 그나마 막판 자금을 줄일 수 있었다.
내가 거금을 쓴 이유는 한 번 떨어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투표구책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채 찾아와 『큰 일 났다. 저들(상대 후보)이 어제 A지역에 집중적으로 뿌렸는데 다들 돌아섰다』고 겁을 주면 순간 낙선의 공포가 밀려왔다. 낙선의 괴로움은 당한 사람만이 안다. 때문에 나는 겁을 주면 5백만원이든 1천만원이든 가능한대로 줬다. 선거때 뿌린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알 길이 없다. 특히 10억원 정도 소요된 조직가동비는 반책까지 내려갔는지, 중간에 새 버렸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또 합동연설회 3회와 정당연설회의 청중동원비 3억∼4억원도 중간중간 상당부분이 누수됐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여당후보라고 해서 선거자금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중앙당이 1억원씩 두번에 걸쳐 보낸 2억원, 계파 보스들의 격려금 1억5천만원, 문중의 지원, 기업과 친구들의 돈등이 모여 13억원 내외가 됐다. 나머지 8억원 정도는 서울의 오피스텔 택지와 골프회원권등을 팔아 마련했다.
천신만고끝에 당선되고 보니 과연 의원직이 그럴만한 자리인지에 회의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는 법정비용을 지킬 각오를 새삼 다지고 있다. 누가 나에게 돈을 요구해오면 이번에 마련된 통합선거법의 벌칙조항을 보여줄 생각이다. 법을 어기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더러 더 이상 재산을 팔 수도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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