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토속적 정감이 넘치는 작품을 남기고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이 문화체육부가 정한 「3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김유정은 30살도 안되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기 까지 「봄봄」 「동백꽃」 「노다지」 「금따는 콩밭」등 농촌을 소재로 한 탁월한 소설작품을 남겼다. 계몽적 이상주의나 감상주의를 모두 거부한 그는 서정적이면서도 건강한 언어선택과 독특한 해학으로 1930년대 농민의 삶을 충실하게 그려낸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앞뒤 울타리에서 부수수 하고 잎은 진다. 바로 그것이 귀밑에서 들리는 듯 나직나직 속삭인다. 더욱 몹쓸건 물 소리. 골을 휘돌아 맑은 샘은 흘러 나리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는다. 퐁! 퐁! 퐁! 쪼록 퐁!> (「산골 나그네」중에서)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앞뒤 울타리에서 부수수 하고 잎은 진다. 바로 그것이 귀밑에서 들리는 듯 나직나직 속삭인다. 더욱 몹쓸건 물 소리. 골을 휘돌아 맑은 샘은 흘러 나리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는다. 퐁! 퐁! 퐁! 쪼록 퐁!>
불꽃처럼 짧게, 그러나 치열하게 살다간 그는 3년의 문단생활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순수한 토속적 서정을 담은 30여편의 주옥같은 단편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일제하 한국 농촌서민의 생활감정과 풍속을 세련된 토속어를 통해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 해학의 깊은 곳에는 애수가 서려있고, 그의 언어 속에는 흙냄새가 물씬 풍긴다. 또 주인공들의 삶 속에는 우직한 한국서민들의 사랑과 미움이 진하게 배어나고 있다.
그는 휘문고보 시절 문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2학년 때부터 림화, 안회남 등과 어울려 러시아문학에 심취했고 로렌스, 맨스필드에 빠지면서 문학도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28년 폐결핵으로 연희전문을 중퇴한 뒤 한때 고향으로 내려가 마을 학동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며 브나로드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33년 고향(강원도 춘성군)에서 상경한 그는 2년 뒤 「소낙비」와 「노다지」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폐결핵에 늑막염까지 겹쳐 시달리던 그는 37년 3월 29일 다섯째 누이의 집이자 휘문동창 유세준의 집인 한 초가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숨진 3월을 「김유정의 달」로 정한 문화체육부는 한국문인협회, 김유정 기념사업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등과 함께 기념학술대회, 문학순례 등 다향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서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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