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대한 구미선진국들 태도는 실로 각별하다. 국민의 총의, 국가철학과 정신이 함축된 것이어서 헌법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다. 혹시나 국민의 동의아래 손질을 할 경우에도 거의 기본권 신장에 초점을 맞춘다. 1787년 12월12일 조지 워싱턴이 의장인 헌법회의에서 제정된 미국헌법도 2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본틀은 유지한채 25차례의 수정을 했어도 대부분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확충에 국한해 왔다.
반면 후진국에서는 예나 이제나 헌법을 식은죽 먹듯 뜯어 고친다. 그런 개정이 민의와는 애시당초 무관한데다 기본권 강화는 커녕 권력자―집권세력의 독재·장기집권을 위한 목적으로 단행됐다.
1948년 7월17일 제정·선포된 우리의 초대헌법은 선진국헌법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참으로 훌륭한 민주헌법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경험도 없이 제헌국회가 이같은 수준높은 헌법을 제정한 것은 놀랍기만 하다. 그 배경은 분명하다. 그것은 비록 반조각의 나라지만, 권력과 부에 대한 티끌만한 욕심이 없이 오직 민주자유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제헌의원들의 순수성과 뜨거운 애국심 때문인 것이다.
이토록 훌륭한 헌법은 세월이 흐르면서 집권자의 장기집권 야욕으로 난도질을 당하기 시작했다.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3선개헌, 유신헌법, 그리고 코미디 같은 선거인단제의 5공헌법등이 대표적 예다. 4·19후의 내각제 개헌과 6·29선언 후의 여야합의개헌 외에는 모두가 권력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단행됐다. 아무튼 건국후 46년동안 근 5년에 한번 꼴로 9차례나 헌법이 만신창이로 손질됐던 것이다.
이런 쓰라린 경험 때문에 국민들은 아무리 좋은 명분과 내용을 담았어도 개헌얘기만 나오면 무조건 경계하고 못마땅해 하는 것이다.
지난주 국회대정부질문에서 안동선의원(민주)이 내각제 개헌설의 진부를 물어 관심을 모았다. 이회창국무총리는 『이해할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지만 사실 내각제 개헌설은 지난 대선이후 정계와 시중에 꾸준히 떠다녀왔다. 내각제 개헌의 가능성·당위론으로 치열하고 팽팽한 대결의 량금시대가 김영삼대통령의 당선으로 막을 내림에 따라 헌정구조를 권력순환과 평화적 정권교체가 용이하게 바꿔야 하고 또 여야 모두 량금이후 마땅한 후계주자가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역감정해소등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시기도 15대 총선 전후라는 얘기까지 곁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국민들에게는 탐탁지가 않다. 어렵게 되찾은 직선대통령제가 겨우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데다 개헌논의가 공론화될 경우 나라 전체가 1년이상 모든 것을 제쳐두고 개헌열병을 앓아야 되는 것도 큰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특정인, 특정세력의 권력편의에 의한 손질이란 말도 안되는 것이다. 김대통령도 작년에 이어 취임한돌 회견에서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지만 부질없는 개헌논의는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80∼90%의 국민이 원할 경우 외에는 개헌은 곤란하다. 우리에게 큰 개헌기회는 딱 한번 남아있다. 장차 통일이 될 때 온 겨레가 뜻을 모아 크게 손질하여 새 나라의 영원한 기본틀을 마련하는 대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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