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은행가 경쟁력강화 전략/은행수는 줄고 점포수는 증가추세 미국 은행들은 경쟁력 강화의 한 수단으로 대형은행들간의 합병을 추진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상업은행의 숫자는 92년 현재 1만1천4백65개에서 2000년에는 약 8천개로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상위 1백20개 대형은행들은 10년내에 15∼20개정도로 압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은행의 숫자는 감소하고 있지만 은행점포수는 늘어나는 실정이다. 합병에 의해 개별은행의 점포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은행산업 전체의 점포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금융당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1년의 은행점포수는 6만4천6개로 81년에 비해 35%이상 늘어났으며 은행당 평균점포수도 81년 3·7개에서 91년에는 5·5개로 증가했다. 대형화로 경쟁력이 강화된만큼 점포수를 늘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대형은행들간의 합병으로 은행의 자산규모도 급속히 증가되는 추세다. 한 금융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90년에는 자산이 2천5백억달러를 초과하는 은행이 한곳도 없었으나 2000년에는 2개 정도가 출현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1천억달러에서 2천5백억달러이하의 은행이 90년 3개에서 2000년에는 5개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2백50억달러에서 1천억달러이하의 은행도 25개에서 40개로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10억달러미만의 은행은 90년 9천3백개에서 7천개로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의 대형화가 가속화될 것임을 시사하는 분석이다.
미국은행들이 경쟁력재건을 위한 개혁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것은 알고보면 채 10년도 안된다. 그리고 이 작업이 촉발된데는 80년대의 은행도산사태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시 미국은행의 전국적 도산사태는 1930년대의 공황에 비견될 정도로 광범위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었다.
미국은행의 도산은 80년대초 연간 10개에 불과하던 규모가 해마다 늘어 86년1백82개에서 87년도에는 연간 1백98개로 2백개수준에 육박했다. 이는 30년대의 금융공황이후 최대의 도산사태로 기록됐다. 이어 다음해인 88년 2백21개로 늘어난뒤 89년 2백13개로 주춤거리는 추세를 보이면서 90년대에 들어 1백개대수준으로 떨어졌다. 도산이 하향추세를 보이기 시작한것은 연방정부의 대대적 금융산업 구제대책이 마련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당시의 은행도산은 무엇보다도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약화가 주요인으로 꼽혔다. 정부의 엄격한 금융규제가 점차 철폐되면서 비은행금융기관및 외국은행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한채 경영수지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80년대중반이후 경제불황이 심화되고 부동산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부실대출자금이 늘어난데다 이자율하락에 따른 예금유출등이 도산이유의 큰 몫을 차지했다.
은행이 도산될 경우 미국은 연방금융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가 고객예금에 대해 10만달러까지 보상해주는 고객예금보호를 위한 은행보험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대규모 은행도산에 따라 이 기금이 적지않은 압박을 받기도 했다. 미국의 금융제도는 주간영업을 철저히 금지하고 점포나 지점설치도 엄격히 제한하는등 규제가 까다롭다.
각 지방자치단위의 지역에 한정된 지역금융(COMMUNITY BANKING)의 성격을 띠고 있다. 때문에 자본금이 수백만달러에 불과한 소형은행들이 많다. 이런점이 우리에게는 생소한 은행도산이 미국에서는「실제상황」이 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뉴욕=조재용기자】
◎신용 탄탄하면 앉아서 돈빌린다/미 금융기관 대출 관행/사전심사·사후관리 철저… “한국형 로비” 안통해
『한국경제가 5마일의 속도에서 1백마일의 속도로 질주하려면 4바퀴중 아직 낡은 채로 남아있는 바퀴 1개를 이미 성장한 나머지 3개와 같은 수준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미국최대 손해보험회사 AIG사 아시아태평양지역담당 부사장 로널드 앤더슨씨는 한국의 다른 산업은 이미 선진국수준까지 근접하는 성장을 이뤘으나 유독 금융은 낙후한 채 남아있다는 사실을 빗대어 이같이 말했다.
앤더슨씨는 『그동안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지나친 보호정책으로 자생적인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다』며 『금융여건의 낙후성을 고치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선진국 진입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근무경험이 있는 한국계 미국 현지법인 직원들은 앤더슨이 지적한 한국의 낙후한 금융여건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국내 모기업에서 자금부 직원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파견온 이모씨(35)는 서울에서 4∼5명이 하던 일을 미국에서는 혼자서 하고있다. 매일매일 은행 마감시간에 쫓기며 이리저리 은행들을 찾아다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결재는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컴퓨터만 조작하면 된다. 또 은행업무상 서류등이 필요할 경우 은행직원이 직접 회사를 방문, 해결해 줄 때도 있어 미국발령직후엔 서울과는 너무나 다른 업무분위기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다.
국내 대그룹 미국 현지법인의 자금부장 김모씨(45)가 은행에서 빌린 회사돈의 지난해 평균잔액은 약 4억달러로 한화로는 3천2백억원규모이다. 한국에서같으면 대기업이라하더라도 일개 회사의 부장급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채규모다. 놀라운 것은 액수가 아니라 이같은 돈을 빌리기 위해 김씨가 한번도 은행에 찾아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신용만 있으면 회사임원들이 은행을 찾아가지 않아도 돈을 빌려주는 미국의 금융관행 때문이다. 어떤 때는 은행사람들이 『우리 돈을 좀 써달라』며 「론 세일」(LOAN SALE)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미국은행들이 모든 기업에 돈을 쉽게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는 기업은 사업성, 과거 은행과의 거래실적, 재무제표, 경영자의 경영철학등에 하자가 없어야 한다. 미국은행들은 우수한 기업에 돈을 빌려주되 까다로운 대출심사를 거친다. 과거 은행거래에서 신용이 좋지 않거나 부도를 낸 기업은 은행거래가 극히 어렵다. 은행과의 거래실적이 없는 신규기업도 은행을 이용하기에 쉽지 않다. 과거 신용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용이 탄탄하지 못한 기업들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더라도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하며 심지어 한국에서와 같이 꺾기(양건예금)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자율도 대출 기업체의 신용 능력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이같은 어려움도 결국 신용이 좋고 사업계획이 우수하면 대출받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담보가 있어도 큰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자금부직원들은 물론 담당임원 심지어 그룹회장까지 은행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다.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사후관리가 철저한 것도 미국의 은행과 금융기관의 관계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은행간부들이 돈을 빌려준 기업에 찾아가 경영자와 점심이나 차를 나누는 일을 중요한 일과의 하나로 삼고 있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들은 거래기업의 간부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대출기업의 경영철학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도 한다.【뉴욕=유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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