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년전 어느 화랑에서 누드소묘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인사동거리가 한창 붐비는 정오께 한쌍의 젊은 남녀가 들어왔다. 잠시 멀쑥한 표정으로 남자를 뒤따르고 있던 여인이 열심히 그림감상을 하고 있던 그에게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OO씨, 당신 수준이 이런 줄 몰랐어요.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보낼 거예요? 빨리 나가요』 그 여자는 그림감상에 열중인 남자의 등 떼밀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누드화 역사는 서양화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것이기는 하나,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늘까지도 습관적으로 누드화가 기피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제1회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의 몰이해로 본인의 「나부군상」이 입선이 되고도 철회된 사실은 당시 사람들의 누드화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85년 대한적십자사 창립 80주년을 기념하여 필자가 그린 「낙원의 봄」으로 인해 누드화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한 셈이다. 「낙원의 봄」은 선녀 같은 여인들이 벗은 채 들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티브로 낙원을 상징한 그림이다.
대한적십자사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적십자사들의 심벌은 거의 모두 여성의 누드화로 되어 있다.
남성은 대체로 투쟁을, 여성의 누드는 평화를 상징한다. 더욱이 누드화에는 계급이 없으며, 코스튬화에서 보듯 의상에서 오는 민족간의 거부감이나 종교적인 이질감도 없다.
서구에서는 예부터 평화의 상징으로 누드의 여신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더욱이 프랑스에서는 실존의 여왕의 누드화를 그려 평화의 상징으로 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체를 징그럽고 상스럽다고 생각하는 관습으로 인해 누드예술에는 아직도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도 청소년의 고결한 성교육을 위해서라도 예술성이 강한 누드예술을 적극적으로 감상시키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김흥수(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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