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음악제는 머리속 소리 악보화 자극제” 94안익태 음악제를 앞두고 「교향시 아킬레스의 방패」 연습이 한창인 18일 KBS 교향악단 연습실. 하오 1시반이 넘자 지휘자 박은성씨(49)가 『배가 고파 안되겠다』며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그제야 뒤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작곡자 림지선씨(34)가 하프주자에게로 간다. 하프를 「다기당」하고 울려 국악같은 맛을 주자는 것이 작곡의도인데 하프주자는 「당당당」하고 서양음악식으로 연주하므로 페달을 밟아 농현을 살리는 글리산도 기법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몇번 소리를 맞춰보니 원하던 「다기당」이 나온다.
『연습 때부터 작곡의도를 충분히 살려주니 연주회를 맞는 마음이 편안하다』고 림씨는 말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10월 일본 지휘자의 지휘로「아시아 현대음악제」를 통해 국내서 초연됐다. 그 때도 연주를 맡았던 KBS 교향악단은 「이 어려운 곡」을 두번째 하게되니 더 잘할 자신이 붙는다고 한다.
이 교향악은 림씨가 미국 유학시절 영국시인 W·H·오든의 동명 시집에서 영감을 받아 황폐화된 현대 문명과 인간의 소외를 다룬 것이라지만, 관악기와 현악기가 복잡하게 얽히는 가운데 높게 들려오는 다양한 타악기의 소리가 오히려 도심을 밀려가는 인파 속에 얼핏 스쳐버린 「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간절함 같은 정서를 느끼게 한다. 그는 이런 도회의 풍정을 묘사하기 위해 실로폰·비브라폰·마림바·글로켄시필·첼리스타 같은 다양한 타악기와 건반악기를 활용하고 있다.
그가 이 작품을 구상한 곳은 유학지인 미국 인디애나였지만 악보로 옮긴 것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아파트에서였다. 89년 9월부터 석달 동안 문을 걸어닫고 『머리 속에 쏟아지는 소리를 쉴 틈도 없이 받아적어 내려갔다』고 한다. 『그무렵 돌을 넘긴 맏아들이 문을 두드리는데도 한번 놓치면 그 소리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아 문도 따주지 않았다』고 회상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번진다.
임씨는『막상 연주되는 것을 들으면 좀더 쉬운 곡을 써야지 싶으면서도 머리속에서 소리가 쏟아져 내리는데는 어쩔 수 없다』고 현대음악 작곡자다운 고민을 토로한다. 『그런 점에서 머리 속의 소리를 악기의 소리로 확인하게 해주는 안익태음악제는 커다란 격려와 자극이 된다』고 덧붙였다.【서화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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