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앞 경복궁을 차지하고 민방위훈련때에는 탱크를 앞세워 수도의 심장부를 질주하며 위세를 과시하던 부대의 명칭이 30경비단이며 그 이웃에 자매부대격인 33경비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반에게까지 알려진 것은 쿠데타적 하극상사건으로 정의내려진 79년 12·12사태때였다. ◆그때까지 비밀의 장막에 가리워진채 얼굴없는 부대로 남아 있던 이부대가 창설된것은 그로부터 18년전인 61년 5·16쿠데타직후였다. 쿠데타에 동원되었던 당시 30사단소속 2개대대가 원대복귀하지 않고 그대로 눌러앉아 새로 편성된 수도방위사령부예하로 배속된것이 이부대의 창설경위다.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군인들이 무력으로 권력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대비책으로 창설한 부대가 30경비단이었다. 대대편제였던 이부대는 1·21사태 문세광사건등을 겪은뒤 유신체제하에서 연대규모로 증강되었고 장갑차며 탱크등 중장비까지 갖추어 친위부대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한 친위부대가 국권수호에는 별로 기여함이 없이 군지휘계통의 혼란과 역모에 일역을 맡은것은 12·12의 자초지종이 그대로 입증한다. 한양정도6백년을 맞아 30경비단을 경복궁서 옮기고 33경비단과 합쳐 규모도 줄이기로 했다는 보도가 며칠전 나왔다. ◆유서깊은 경복궁에 군부대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자체가 군사문화의 잔재인만큼 30경비단의 이동배치는 당연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깊다. 조선총독부청사로 세워진 국립박물관건물철거방침보다 앞서 30경비단의 이동방침이 내려졌어야 마땅했는데 96년에야 이동배치가 끝난다고 하니 맥이 빠진다. 군사문화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고 경복궁을 완전복원하고서 한양정도6백년을 맞았더라면 훨씬 뜻깊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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