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경제논리 안통해/적자에도 “최고수준” 일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월급을 주어야 마땅하다. 기업간의 경우도 똑같다. 같은 업종의 기업이라도 생산성은 업체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생산성이 높은 기업의 임금수준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임금수준은 차이가 있는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산성이 높건 낮건 관계없이 같은 업종이면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것으로 여기고 있다. 심지어는 생산성이 가장 뒤처지는 업체가 최고의 임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손해보험회사인 H사는 지난해 3백61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 회사는 만성적인 노사갈등으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누적적자가 1천4백억원을 넘는다. 또 지난해 외형성장률도 18%로 업계평균인 59%에 훨씬 못미쳤다. 그러나 이 회사의 종업원임금은 업계 최고수준이다. 대졸신입사원(3년차 기준)의 월평균급여는 1백56만원으로 업계 선두회사인 S사(1백43만3천원)나 또다른 H사(1백37만4천원)에 비해 월등히 높다. 고참부장급인 1급갑의 월급여(보너스 수당등 포함)가 3백22만6천원으로 역시 S사의 2백94만6천원이나 또다른 H사의 3백만8천원에 비해 20여만원씩 높은 수준이다. 같은 손보업계의 D사도 외형이나 업계 순위에서는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지만 임금은 최고수준이다.
이같은 사실은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이 생산성이나 영업실적과 무관하게 결정되고 있다는것을 잘 말해주는 사례다. 생산성이 높으니 종업원들에게 그에 상응한 급부를 제공하고, 반대로 타사에 비해 영업실적이 나쁘니 임금을 적게 줄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경제논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우리 회사는 왜 저 회사에 비해 월급을 적게 주느냐』는 주장이 보편화돼 있다.
지난 연말 한달 넘게 노동쟁의로 생산차질을 빚었던 S자동차회사의 경우도 비슷한 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타사에 비해 10%이상 임금이 적다는것이 노조의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5%나 감소해 동업 타사들이 15∼23%의 매출신장을 보인것과는 대조를 보였었다.
물론 생산성이 낮고 영업실적이 떨어진 책임을 종업원들에게만 지울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일면이 없지도 않다. 근로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회사의 다른 문제, 예를 들어 경영자의 능력부족이나 시설의 노후화, 조직의 비효율성등이 생산성향상에 더 큰 걸림돌이었을 수 있기때문이다.
문제는 개별업체의 여건을 무시한 이러한 행태들이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데 있다.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인건비를 똑같이 지불하면 그 비용을 가격에 전가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보전을 해야하고 결국은 상품의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임금―저생산성―저경쟁력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것이다.
고임금의 벽을 넘으려면 「동일업종 동일임금」의 환상부터 깨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금결정이 경제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제외적인 고려에 의해 이뤄지는 관행을 버리지 않고서는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것이다.【김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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