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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사랑의 매」 「폭력」사이 원칙시급(초등교육을 살리자: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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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사랑의 매」 「폭력」사이 원칙시급(초등교육을 살리자:15)

입력
1994.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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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위해 불가피” 대세/“성장후 악영향” 추방논도 고조 『상식과 교양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부모중에 누가 체벌이나 폭언으로 자녀를 대하고 싶어하겠는가.  그러나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체벌이 불가피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왜 그렇게 때릴 일이 많은지. 형편없는 성적표, 고분고분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하는 태도등…』 「성숙한 부모, 자유로운 학교, 건강한 아이」(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편·대화출판사)에 실린 수기에서 한 어머니는 체벌없는 자녀교육의 어려움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이 학부모는 어느날 집에 놀러온 옛 동창앞에서 국교 4학년생인 딸이 버릇없는 행동을 하자 몹시 난처했다.

 『아이를 잘못 가르쳤다』고 핀잔을 할 것만 같아 부아가 치밀어 올랐으나 꾹 참았다. 친구가 돌아간뒤 다짜고짜 딸의 방으로 달려가 양쪽 뺨을 정신없이 때렸다. 이성을 잃고 마구 손찌검을 해대던 그녀는 딸이 울부짖으며『어른들은 좋겠다. 마음대로 때릴 수 있어서…』하고 목쉰 소리를 토해냈을 때 그만 숨이 콱 막혀 버리는듯 했다.

○사회적 기준모호

 이 학부모는 친구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과 모욕감 등이 뒤범벅이 되어 화풀이를 해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뒤 두번 다시는 체벌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체벌이 부모가 자녀와의 사이를 인격관계가 아닌 소유관계로 인식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이성을 망각한 체벌은 폭력이 되지만 훈육의 방편인 체벌은 경우에 따라서는 「사랑의 매」가 될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체벌에 관한 사회적 가치관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있다. 요즘에도 기준이 모호하긴 하지만 부모나 교사가 드는 매는 항상 「옳은 사람이 되라」는 목적의식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교육을 위해선 신체적 체벌이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각종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우리사회가 체벌에 대해 상당히 관용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92년 한국교총이 4백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실태에 관한 조사연구」에 의하면 전체응답자의 88.9%가 「학교에서 체벌은 교육상 필요하다」고 했고 이중 4.6%는 「체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한 반면 체벌을 절대 반대한 학부모는 6.1%에 불과했다. 학부모들의 체벌에 대한 찬성률은 자녀가 국민학생일 경우가 94.7%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은 92.9%, 고교생은 91.0%로 저학년일수록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제일제당 홍보실이 주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정에서의 자녀체벌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중 91%(9백10명)가 체벌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악습 되풀이않게

 그 이유에 대해 72.8%가 「교육상 필요해서」라고 답했고 「말을 듣지 않아서」(12.2%) 「감정이 앞서서」(10.8%) 순으로 나타났다.

 『교사의 입장에서 과밀학급을 이끌어 나가다 보면 때때로 체벌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학교규율을 밥먹듯이 위반하는 학생을 지도한다든가 산만해진 학급분위기를 바로잡으려 할때 따끔한 체벌만큼 효과가 높은게 없죠. 교사들이 우선 인내와 끈기를 갖고 지나친 체벌을 자제해야 겠지만 우리의 교육상황은 종종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합니다. 또 폭력과 체벌은 반드시 구분돼야 합니다』

 서울 B국교 6학년담임 교사의 말이다. 이처럼 우리 교사들은 서로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교육 목적상 체벌의 불가피성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편이다. 물론 요즘 교육현장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교육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교사·학부모단체들은 일체의 체벌행위의 밑바탕에는 폭력성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에 철저히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체벌을 받고 자란 아이는 부정적 자아개념을 갖게 되며 결국 부인이나 자식을 때리는 성인으로 성장, 체벌이 되풀이 되는 악순환을 가져 온다』고 말한다. 체벌에는 구타나 성적학대, 정서적 방임, 욕설, 모욕등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전체가 해당되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악습이 모두 추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벌은 과연 사랑의 매인가, 아니면 훈육을 빙자한 폭력인가. 체벌이 우리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때마다 일관되게 제기되어 온 물음이다. 이러한 체벌논쟁은 일반국민들에게 체벌의 잠재적 폭력성과 불합리성을 일깨우는데 어느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논쟁으로 치우친 경향도 없지 않다.

 서울대 박성수교수(52·교육학과)는『우리 사회에는 체벌에 대한 원칙이 없다』며『교육현장의 잘못된 체벌관행들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도 체벌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규범을 정립하고 발전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대화·설득이 장기적으론 더효과”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훈육과 생활지도 방편으로 매를 들고 있습니다. 대화나 설득보다는 힘이 덜 드는 반면 효과는 훨씬 빨리 나타나기 때문이죠. 훈육은 보상과 처벌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인데 우리 부모들은 마치「훈육=처벌=체벌」이라고 잘못 인식하고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훈육의 근본목적은 아이에게 사회가 기대하는 바를 가르쳐 주고 사회적 기대에 적응하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체벌은 일시적 효과를 낼 수는 있어도 사회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인간을 길러낼 수는 없습니다』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상담분과위원장 이은옥씨(47)는 진정한 훈육을 위해서는 가르치는 이의 인내와 희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씨는『당장 손쉬운 체벌만으로 잘못을 시정하려들지 말고 보다 바람직한 형태의 처벌방안을 생각해봐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우선 처벌이 잘못한 행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아이들이 그 연관관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씨는 또 이렇게 말한다. 

 『좋은 훈육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훈육을 책임지더라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는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행동이 어느 때에는 용납되고 어느 경우에는 처벌의 대상이 될 때  큰 혼란을 겪습니다. 일관성이 없는 처벌은 비교육적인 억압과 갈등구조를 양산해낼 뿐입니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화풀이식 처벌이 교육현장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상명여대 교육학과 강사인 이씨는 학부모연대의 교육폭력 상담전화인「호루라기전화」(743―2941)에서 수년째 아동학대등 교육폭력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하고있다.

◎미·영선 대체로 허용­외국경우/“인간존중” 불·네덜란드 등은 금지

 체벌을 둘러싼 논쟁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관심사임에는 틀림없다. 대부분의 교육선진국들은 체벌에 대해 나름대로 철저한 원칙을 갖고 있다.

 엄격한 청교도 윤리를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적 교육관 때문에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체벌이 상당한 정도로 허용돼 왔다. 영국인들은「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는 속담을 믿고있다. 회초리는 규율을 지키게하고 인격형성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탈선행위를 규제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것이다.  영국하원은 지난 86년 모든 공립학교에서 매질을 포함한 일체의 체벌을 폐지시키는 내용의 교육법 개정안을 단 한표 차이(2백31대 2백30)로 통과시켰다. 87년부터 발효된 이 법은 사립학교에는 해당되지 않고 공립학교만 적용되고 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지방에선 아직도 75% 이상이 체벌을 인정하고 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대륙의 여러나라들은 르네상스 이후 인간중심의 사상이 확산됨에따라 점차 체벌을 금지하게 됐다. 핀란드는 1783년 체벌을 법으로 금지했고 프랑스(1795년) 네덜란드(1850년) 오스트리아(1870년)등도 뒤따랐다. 

 미국은 주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50개주 가운데 매서추세츠, 메릴랜드, 뉴저지주를 제외한 47개주에서 체벌을 허용하고 있으며 많은 주에서 주법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은 명치 12년의 교육령 및 소화 16년의 국민교육령에 징계는 할 수 있지만 체벌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하종오·최성욱·황유석·변형섭·김준형·장학만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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