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부모말을 안듣는 자녀들이 있다. 이때 부모가 고함을 지르고 떠들면 자녀는 대들고 결국 집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이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나중엔 자녀에게 부모의 고함은 면역이 돼 전혀 효과가 없다.
어려서는 『빨리 일어나거라』로 시작한 고함이 점점 『전화에 왜 그리 오래 매달리느냐』등으로 넘어가고 귀가시간 술 담배까지 소재로 등장한다.
부모는 처음엔 타이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타이르는 것이 잔소리로, 잔소리는 꾸지람으로 변한다. 홧김에 나오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내뱉게 된다.
자녀를 꾸짖을때 가장 주의해야할 일은 홧김에 나오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오래전 일인데 인상깊게 남는 경험을 했다. 여섯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온 친구이야기다.
이 아이는 유난히 말을 안듣고 수선을 떨었다. 처음에는 친구가 타이르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었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몇달이 지나고 친구를 만났을때는 이 아들이 모범생이 되어있었다. 친구의 호소도 모르는척하던 친구아들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친구아들에게 나중에 물어보았더니 친구가 매를 든것도 아니고 야단을 친 것도 아니었다.
『우리 엄마가 화 내는 것을 본 적은 없어요. 엄마는 화가 나면 눈이 점점 작아져요. 눈이 반정도 감기면 심각한 상태이고 아주 큰 일이 생겨야 눈이 거의 감길 정도가 돼요』 친구아들이 심각하게 말을 해 감히 웃을수 없었다.
그러나 화를 표현하는 방법이 신사적이라고 생각됐다. 때리거나 고함을 지르는 것보다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자녀는 항상 자신이 취할 행동의 한계를 알고 싶어한다. 이 한계를 잘 모르거나 한계가 일관되지 않을때 자녀는 불안해 한다. 심지어 더 나쁜 상태로 악화되기도 한다.
행동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시키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다. 어떤 부모는 눈의 크기로, 또 다른 부모는 자녀가 잘못했을 경우 구석에 혼자 있게 하는 벌을 준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한계를 벗어난 행동을 자녀가 되풀이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벌은 타당성을 가지고 일관성있게 가해야 효과가 있다.
그러나 화가 났다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아무 말이나 뱉어 버리면 전혀 효과가 없다. 특히 욕은 자녀의 인격을 무시하고 저주를 하게 돼 역효과까지 난다. 『이 원수야, 망할 ×, 몹쓸 녀석』등의 욕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전정재 미캘리포니아 주립대교수>전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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