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사흘중 이틀을 길에서…/“설마” 했더니 그대로 생지옥/몇번 “되돌아 갈까”… 온것 아까워 강행군/용변이 큰 고통… 여자화장실은 북새통 설날 귀향길은 최악의 교통지옥이었다. 폭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도로 곳곳이 얼어붙어 평소 5시간이면 족하던 수원에서 포항까지의 고향길이 무려 22시간30분이나 걸렸다.
엄청난 귀향인파와 폭설로 교통전쟁을 치를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우리는 다소 느긋했다. 매년 치르는 연례행사인데다 아무리 눈이 내려도 엄청난 차량행렬로 눈이 얼어붙을 사이도 없어 기껏해야 예년보다 서너시간 정체될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귀향인파가 8일 하오와 9일 상오에 집중될것이라는 여론조사를 감안해 9일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다.
결혼해서 6년째 시골갈때마다 교통체증으로 짜증을 부려온 아내(33)를 달래가며 9일 상오 4시40분 자명종이 울리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고 있는 아들(6)을 깨우고 옷가지를 챙겼다. 아내는 8일 저녁에 미리 준비해둔 김밥과 음료수를 가방에 넣고 보온물통에 커피를 담느라 부산을 떨었다.
대학을 다니는 막내동생(25)과 함께 4식구가 집(수원시 장안구 율전동)을 나선것이 상오 5시30분. 새벽잠을 설치며 아파트현관을 나서는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발이 빠질 정도로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스노체인을 준비하지 않은것이 순간 후회가 됐지만 그시간에 달리 방법도 없어 그대로 출발했다.
수원시내를 통과해 경부고속도로 신갈인터체인지까지 도로가 벌써 얼어붙어 있어 엉금엉금 기다시피 인터체인지를 통과하니 날이 훤하게 밝아왔다.
고속도로도 꽁꽁 얼어붙어 차들은 꼼짝달싹 못하고 서있었다. 미리 준비해온 김밥과 보온통에 담아온 커피를 마시며 눈덮인 야산과 들판을 바라볼때는 그래도 고향가는 재미를 즐길 여유가 있었다.
아들녀석은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연신 창밖을 내다보며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눈발이 굵어지면서 갓길에서 뒤늦게 스노체인을 감는 사람도 있었지만 워낙 속도가 더디어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점심도 차안에서 김밥으로 때우고 죽암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이 하오 9시. 꼬박 15시간30분이 걸렸지만 여전히 대전에도 미치지 못한것이다.
휴게소는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특히 여자화장실에는 10여나 길게 줄이 이어졌고 다투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다급해진 여자들이 서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야단이었다. 4대의 공중전화부스도 초만원이었다. 고향집으로 전화를 거는 이들중에는 사정을 설명하며 서울로 돌아가야 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귀향객은 『내일 아침 차례전까지 도착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평에서 8일 밤 11시에 출발했다는 한 40대 남자는 『이렇게 교통이 생지옥인데 왜들 고향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아내는 지금이라도 되돌아가자고 성화를 부렸다. 심지어 교통방송에서도 귀향길 포기가 현명하다고 은근히 전해올 정도였다. 아들도 주위가 어두워지자 눈도 싫증이 났는지 잠이 들었다. 몇번이나 되돌아갈까 망설이다 막내동생이 초지일관을 고집해 이왕에 고생한 시간이 아까워 강행군하기로 결정했다.
대전을 지나면 소통이 원활했던 예년과 상황이 크게 달랐다. 도로가 다소 녹아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차들은 추풍령까지 시속 20∼30로 서행을 계속해야 했다.
추풍령을 넘어서자 그제야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속 1백로 달리자 속도감때문에 긴장이 더했다.
경주톨게이트를 지나 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10일 새벽 4시. 무려 22시간30분 1박2일이 걸렸다. 평소 길어야 5시간 고향길이 미국LA나 유럽지역을 왕복하는 시간과 거의 맞먹다니….
이번 귀향길에 가장 큰 고민은 용변을 보는것이었다. 배고픔이야 음식을 미리 준비해 왔고 곳곳에 휴게소가 있어 별불편은 없었지만 화장실 찾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도로변에 실례를 하려니 뒤통수가 근질근질했지만 나중에는 염치를 가릴 경황이 없었다. 남자들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여자들은 정말 고통이었다.
귀경길도 시간은 덜 걸렸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1일 하오부터 중부지방에 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11일 오전에 일찌감치 출발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출발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설날도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종일 친척집으로 인사를 다니느라 운전을 해야했고 밤늦게까지 친지들과 어울리느라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눈을 뜬 시간이 상오 10시. 상오중에 추풍령을 넘기로 한 계획이 출발부터 차질이 생겼다. 상오 11시께 포항을 출발해 김천을 지날때쯤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추풍령에 도착하니 하오 4시무렵. 귀성객들은 차에서 내려 눈덮인 산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는등 다소 들뜬 표정들이었다. 갓길에서 스노체인을 감는 운전자들도 간혹 보였지만 대부분은 출발때와 마찬가지로 눈길에 무방비 상태였다.
그러나 추풍령을 넘어서자 차량행렬은 의외로 드문드문했고 노면도 그다지 미끄럽지 않았다. 출발 14시간만인 12일 새벽1시께 무사히 집에 도착하자 그제야 한숨이 놓였다.
연휴 3일중 설(10일) 하루만 고향에서 보내고 이틀을 꼬박 도로에서 허비한것이다.【정정화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