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통한 세상 긍정 작가는 소설에 갖가지 모양새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자신의 얼굴을 감추지만 제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 얼굴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소설마다 그 얼굴의 노출정도가 다를 뿐이다.
임철우가 얼마 전에 펴낸 「등대 아래서 휘파람」 (한양출판사간)은 작가의 얼굴이 비교적 선명하게 노출된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추억의 파편」을 모아서, 「추억의 서랍」에서 꺼낸 「밋밋한 흑백 풍경사진」을 펼쳐 보이면서, 그의 「초라한 삶과 꿈꾸기의 흐릿한 궤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은 몇 년 전에 나온 「그 섬에 가고 싶다」와 쌍생아나, 두 작품은 모두 작가가 작품의 전면에 나서는 자적적 소설인데다가, 30대의 화자가 서두에 자신을 소개한 뒤 과거로 돌아가 오래 전에 경험한 것들을 풀어놓고 나서 말미에 등장하여 마무리 인사를 하는 구조를 동일하게 보이고 있으며, 또 고은의 「만인보」라든가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길 모퉁이에서 만난 사람」처럼 두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소개하는 인물열전으로서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섬에…」가 낙일도에서의 작가의 유년기를 다루고 있고 「등대…」가 광주에서의 작가의 소년기와 청년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즉 두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다르다는 점에서 후자는 전자의 이복형이기도 하다. 특히 후자가 전자보다 더 진솔하게 작가의 「어둡고 음습한 과거」의 비화를 토로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한다. 바로 이런 진솔한 토로가 송기원의 「아름다운 얼굴」의 그것처럼 독자를 끌어당기는 묘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임철우의 이런 「고해성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어두운 과거에 구속되어 있는 자아를 해방시키려는 욕구의 소산이다. 이런 의지와 욕구는 자기 긍정을 위한, 그러니까 이 땅에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대한 긍정적 해답을 찾기 위한 불가피한 절차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아성찰과 자아해방의 중간지점을 통과하여 자기긍정의 목표물에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다 하겠다. 그 결과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것은 가족을 비롯한 이웃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폭 넓은 이해와 따뜻한 사랑이다. 그것은 주인공이 그토록 경원하던 아버지와 결국 화해하는 장면이나 가난과 각종 사연으로 고통받다가 죽거나 미치거나 병든 이들에게 바치는 애정에서 금방 드러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초라하고 외롭게 사는 이들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애정을 보이면서, 주인공이 바다를 떠돌던 선원생활을 청산하고 시인으로서 뭍에 자리잡기를 결심하는 이 작품의 결말이 잘 알려주듯이,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이 살만한 공간임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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