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아주머니가 15살쯤되는 아들과 함께 나를 찾아 왔다. 그 아주머니는 「인사드려라, 똑바로 앉아라, 존대말은 왜 안쓰니」등의 말을 하면서 줄곧 자녀 행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바빴다. 처음 보는 선생님앞에서 이렇게 심한 인격모욕을 당하면서도 이를 감수하는 학생의 모습에 더욱 놀랐다.
이 학생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개구리를 찬물에 넣어 두고 열을 조금씩 가해 뜨겁게 해주면 개구리는 그냥 앉아 있다가 그대로 죽는다는 이야기다.
냉혈동물인 개구리는 물의 온도에 따라 자기 몸의 온도도 변하기때문에 물이 뜨거워져도 느끼지 못하고 결국 뜨거운 물에서 죽는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실험실의 개구리처럼 점차 심해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느끼지 못하고 자라온것으로 보였다.
학생을 다른 방에 보낸후 아주머니는 정성을 들여 키워놓은 자식이 자신과 거의 말을 하지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있는 정성을 다 들여 길렀는데 대화가 왜 안됩니까. 가정교육을 열심히 시켰는데도 말을 왜 안듣는지 모르겠어요. 대화가 안통하니 저도 어떻게 할수가 없어요. 아마 제가 부족해서 그런가 봐요』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정성이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랑을 주고 물질적으로도 풍부하게 만들어준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을 충분히 베풀더라도 자녀의 자아는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물질적 풍부함이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여건도 아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는 존경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또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은 존경심이 어느정도 우러나올때 생긴다. 행동이나 생각에서 상대방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느낄때 존경심은 생긴다.
그러나 자신이 무시당하고 자아가 짓밟힐때는 존경심은 커녕 오히려 반발감이 생긴다. 특히 자아가 성숙해가는 청소년기엔 무시당하고 창피를 당할 경우 대화단절로 이어질 때가많다. 대화를 하려면 서로 어느정도의 존경심이 깔려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외출후 돌아왔는데도 자녀가 반갑게 맞이하지 않거나 말도 안할때는 우선 자녀의 자아의식을 무시한 행동을 범하지않았나 돌아봐야한다. 즉 자녀가 바라보는 부모의 존엄성(존경심)에 금이 가지않았나 생각해야한다.
이때 「왜 버릇이 없느냐」고 성급하게 다구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므로 주의해야한다.<전정재·미캘리포니아 주립대교수>전정재·미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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