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온 세스나기 빙판나빠 착륙못해/머리위 선회하다 돌아가… 대원재회 불발/남극산맥,기상선 마치 “하얀바다위의 섬” 12월 16일. 베이스 캠프에서 윤평구기자와 정길순대원이 세스나기로 오기로 한 날이다. 상오11시30분부터 승환이는 무전기를 옷속에 켜놓고 행군을 했다. 하오1시30분께 잠시 쉬면서 『여기는 탐험대, 세스나 응답하라』고 했으나 아무 대답이 없다. 계속 걷는데 하오2시가 지났을 무렵 갑자기 오른쪽에서 「윙」소리가 났다. 승환이가 들뜬 목소리로 『비행기다』라고 소리친다. 정말 반갑게도 주황색 세스나가 지평선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즉시 무전기를 켜자 윤기자가 나온다.
그러나 세스나는 몇번 머리 위를 선회하더니 『곳곳에 딱딱한 얼음이 많아 못내리겠다』고 한다. 우리는 조종사에게 잘 얘기해 내려보라고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스나기는 물건을 휙 던져버리고는 베이스 캠프로 기수를 돌렸다. 아, 넓고 넓은 빙원에서 보고 싶은 대원들을 보고도 못 만나다니. 한없이 허전하고 섭섭하다. 다른 대원들도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착잡한 마음을 가다듬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세스나에서 여기 저기에 던져준 김치·고기·라면·케익등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하오9시에 베이스 캠프와 교신했다. 정대원은 그동안 우리가 찍은 필름을 못받아온 윤기자가 밥도 안 먹고 텐트안에 누워 있다고 전한다. 화가 많이 나겠지. 아마 책임감 때문이리라.
이날 정대원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오늘은 대원들에게 가는 날이다. 핫 초코를 타서 보온병 2개에 담았다. 상오11시50분 드디어 세스나에 시동이 걸리고 12시에 활주로에 들어섰다. 사뿐히 이륙하자 밑에 보이는 엘즈워드산맥이 너무나 아름답다. 하얀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처럼 보인다. 예정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차차 흥분된다. 창 아래로 대원들을 계속 찾는다. 드디어 저만치에서 일렬로 행진하는 대원들을 발견했다. 반갑고 기쁘다. 그러나 조종사 맥스는 지상상태가 안 좋아 착륙이 어렵다고 한다. 활주로를 안 만들어 놓았다고 화를 낸다. 대원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뻐하는 모습까지 보이는데 맥스는 착륙시도도 안해본채 안된다고만 한다.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있나. 할 수 없이 물건을 하나씩 던져 주고는 방향을 돌렸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 앞에 탄 윤기자는 더 심란하고 화가 났는지 아무 말이 없다」
12월 18일. 작은 산이 나타나고 이어 계속 누나닥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9시 베이스와 교신. 남위 85도에 있는 연료창고에 필름을 갖다 놓으면 비행기가 찾아가겠다고 한다. 좌표는 남위 85도13분06초, 서경 87도54분05초지점. 그곳에 가면 대나무 표지와 연료 드럼통이 있다고 한다. 넓은 빙원서 한 점을 찾아 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도 25를 걸었다.
12월 19일. 바람은 상당히 가라앉았지만 시계는 화이트아웃현상으로 아주 나쁘다. 출발하자마자 시커먼 크레바스가 나타나더니 점점 많아진다. 우왕좌왕하다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히든 크레바스(눈이 덮여 안 보이는 틈) 지대에 들어서고 말았다. 대원들은 두려움에 싸인채 썰매에서 벨트를 풀고 방향찾기에 바쁘다. 급히 모아놓고 절대로 두 명이 한꺼번에 크레바스에 들어가지 말것과 한 명이 건너가면 뒤에서 잘 관찰하도록 했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 히말라야 크레바스에 비하면 덜하지만 화이트아웃 때문에 이곳을 헤쳐 나가기는 쉽지 않다. 마음을 졸이며 전진하다 나도 썰매에 끌려 뒤로 몇번이나 자빠졌다. 하루 종일 맨 뒤에서 앞서가는 대원들의 꽁무니만 쳐다보면서 고생한 끝에 겨우 크레바스 지대를 벗어나자 저 멀리 남쪽에 희미하게 하늘이 열린다. 내일은 제발 날씨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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