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수 계은숙씨가 이달말 롯데호텔에서 디너쇼를 갖는다는 1단짜리 기사를 신문에서 읽으며 구차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은숙씨는 일본가요를 일본말로 부르는데, 관객은 일본 관광객으로 제한돼 있으며, 외무부의 요청에 의해 공연허가가 나왔다는것이 그 기사의 내용이다. 일본가요가 무슨 폭발물이라도 되는가. 무엇이 그리 무서워서 문을 잠그고 일본인들끼리만 듣게 해야 하는가. 한국인들이 일본가요를 들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기에 그토록 겁을 내는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일본문화가 우리생활에 침투하여 왜색이 범람하는것을 반길 사람은 없다. 일본문화를 수용해도 되겠는가라는 여론조사는 백번을 해도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로 말과 글과 문화를 말살당하는 고통을 겪었던 우리가 일본문화의 유입에 거부감을 갖는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에게 일본문화는 이질감이 약해서 일단 문을 열면 무분별하게 수용될것이라는 우려도 일리가 있다. 특히 일제시대에 성장하여 일본어를 해득하는 세대는 일본을 미워하는것과는 별도로 익숙한 문화를 쉽게 받아들일것이다. 젊은세대의 왜색모방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 개탄을 금치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해 문을 걸어잠글것인가.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일본을 바로 알고, 일본의 좋은 점을 배우고, 마침내 일본을 이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나라의 문화를 외면한채 어떻게 그 나라를 배우고, 더구나 그 나라를 이기겠다는것인가. 일본의 가요나 영화가 우리생활속에 침투하는것을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일본을 극복하겠다는것인가.
『일본의 대중문화 수입을 개방할 시기가 왔다』는 공로명주일대사의 느닷없는 발언으로 촉발된 문화개방 논쟁은 「김영삼대통령의 방일선물을 위한 시나리오」라는 의심까지 겹쳐서 더욱 시끄럽다. 만일 공대사의 발언이 각본에 의한것이라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정부는 쌀개방에서 결과가 뻔한 일을 놓고 끝까지 국민을 속였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론」이 아직 우세한데, 언제까지나 시기상조론에 머물 수는 없다. 하루빨리 이를 공론화하고, 우리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대비해야 한다. 상상은 대개 현실보다 더 끔찍한 법이다. 우리문화의 우월성, 국민의 분별력과 자존심을 믿고 일본문화에 대한 상상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년이면 해방 50년, 한일국교 30년인데, 옹색한 쇄국정책에 매달리는것은 세계화를 외치는 우리의 자세와도 맞지 않는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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