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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보호실의 농심/옆자리 취객 소란에 더 착잡(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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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보호실의 농심/옆자리 취객 소란에 더 착잡(등대)

입력
199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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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을 가버리든지 무슨 결단을 내려야하지 않겠습니까』 2일새벽 서울종로경찰서 경범보호실. 전날 「UR 재협상쟁취, 국회비준거부 및 농정개혁을 위한 전국농민대회」뒤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연행된 농민 14명이 꺼칠한 얼굴로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었다.

 『UR협상이 타결된 뒤에는 송아지값이 장이 설때마다 10만원씩 떨어졌습니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에서 12년째 젖소를 키우고 있는 정헌씨(39)는 83년과 84년 몰아쳤던 소값파동을 떠올리면서『4마리로 시작해 한눈 팔지않은 덕인지 30마리까지 불렸는데…』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상경했던 괴산군 농민회원 20여명이 경찰에 연행된 동료들을 찾아 서울시내 경찰서들을 헤매고 다녔다는데 잘 갔는지 모르겠다고 염려하던 정씨는 『마누라가 여물은 제대로 줬는지 전화라도 해야겠다』고 걱정을 이었다.

 농민회 회원도 아니지만 대회가 열린다는 농민회의 가두방송만 듣고 무작정 상경버스에 올랐다는 강순종씨(59·전북 김제군 성덕면 성덕리)는 당장 둘째아들(30)의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논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푸념하다가 팔자에 없는 경찰서「유치장신세」가 어이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충북 영동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서명훈씨(27)가 청년회의 막내신세를 영영 벗어나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강씨등은 『장가는 갔느냐』고 물으며 농촌에 붙어사는 서씨를 격려했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 농촌이 갈수록 유령마을처럼 변해가는데, 이렇게 기특한 청년도 있느냐는 표정들이었다.

 사는곳은 달라도 하룻밤을 꼬박 함께 지새며 서로 흉금을 토로한 이들은 옆에서 술에 취해 고래고래 고함치는 「수도시민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이 이방인임을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우루과이라운드에 관한 국민인식이 이토록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는 말이었다.【김삼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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