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탐험 계속 긍지심겠다”/이 서울시장 “선진한국 알리는 쾌거” 한국일보 창간 40주년기념 94한국남극점탐험대(단장 고인경·51)가 한국탐험사상 최초로 남극점정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71일만인 29일 하오 2시50분 대한항공 061편기로 개선, 귀국했다.
태극기와 한국일보사기를 앞세운 고인경단장, 허영호(40·파고다외국어학원)대장, 김승환(34·제천시청) 유재춘(32·제천교육청) 홍성택대원(28·대한체육과학대 산악부OB)등 6명이 김포공항국제선 제2청사에 모습을 드러내자 장재근사장을 비롯한 한국일보사임직원, 대한산악연맹관계자와 가족·친지등 5백여명이 힘찬 박수로 이들을 맞았다.대원들은 염광여상고적대의 팡파르연주속에 93미스코리아진 궁선영, 미 김영아양으로부터 환영꽃다발을 받았다.
살인적인 폭풍설속에서 강행군한 탓으로 세기의 철인 허영호공격대장등 공격대원 4명은 얼굴이 부르트고 양볼이 검게 그을렸으나 건강한 모습이었다.
허대장의 부인 이영옥씨(36)는 남편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흘렸으며, 허대장은 아들 재석군(10)과 딸 정윤양(5)을 번쩍 들어안고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고단장의 부인 박경실씨(41)는 『남극점 정복후 6일간 비상대피때 남편을 비롯한 전대원이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면서 『남극탐험대를 이끈 남편이 한없이 자랑스럽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공항에는 내외신기자 30여명이 나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탐험대원들은 환영행사가 끝난뒤 1층접견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고인경단장은 『전국민의 성원으로 남극점정복을 이룩했다』며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한국일보사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21세기를 향한 국력도약의 상징으로서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심신장애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게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허대장은 『남위 84도를 넘어서면서 크레바스가 시작될 때 화이트아웃현상까지 겹쳐 대원들이 갑자기 넘어져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며『정복 하루 전날 25전방에 극점 표지가 있는것을 보고 「이제는 살았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세계 3극점을 정복한것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6대륙 최고봉정복에 도전하겠으며, 원한다면 아들에게도 같은 길을 걷게 하겠다』면서 『그러나 지금 당장은 따뜻한 집안에서 편히 쉬고 싶다』고 말했다.
허대장은 3극점의 차이에 대해 에베레스트산은 크레바스가 많고 산소가 부족해 힘들었고, 북극점은 유빙이 움직여 위험한 반면, 남극점은 강한 눈보라 현상에 1천4백의 기나긴 탐험로를 시간을 잊고 가야했던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그러나 3곳모두 인간의 한계상황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대원들은 기자회견후 무개차 2대에 분승, 카퍼레이드에 나섰다.
선두차엔 고단장과 허대장 정길순대원이, 2호차엔 김승환 유재춘 홍성택대원등 3명이 나눠타고 성산대교―신촌로터리―아현고가도로―서소문―시청앞―광화문을 거쳐 하오 5시5분께 중학동 한국일보사에 도착했다.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동안 연도의 시민들은 『장하다』 『대한민국만세』등을 외치며 환영했다. 대원들은 활짝 웃으며 손을 높이 치켜올려 답례했다.
집무실에서 개선광경을 본 이원종서울시장은 곧 한국일보사로 찾아와 『고생 많았습니다. 정초에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준 여러분이야말로 21세기 선진 한국의 밝은 미래를 활짝 연 진정한 애국자』라고 대원들을 치하하고 장재국본사회장과 환담한뒤 돌아갔다.
한국일보사에 도착한 탐험대는 장재국한국일보회장에게 귀국보고를 했다. 이 자리에서 장회장은 『탐험대의 쾌거는 창간 40주년을 맞아 도약하는 한국일보의 기상을 나타낸것』이라며 『무사귀환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탐험대원들은 이어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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