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정」 출토… 교류 입증/수정제 목걸이 신라「금제품」의 시원 분석/초기 철기·원삼국 미완의 고대사 귀중자료 경남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 고분군은 지금까지 발굴된 가야고분군중 조성시기가 BC 1세기에서 AD 4세기까지 약 6백년에 걸치는 최고·최대 규모(약 5천여평)의 유적이다. 이 지역은 특히 삼국지「위지동이전」에 고대 가야국인 구야국(구사국)이 있었다고 기록된 곳이다. 따라서 90년부터 부산 동의대박물관팀이 발굴해온 이 지역은 한국 고대사에서 미완으로 있는 AD 1∼2세기 전후의 전기가야, 즉 초기 철기시대 및 원삼국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발달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번 발굴에서는 삼국시대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는 완형 수정제 목걸이가 3세기 토광목곽묘에서 출토되어 가야가 이 시기에 매우 발달된 수공예 문화를 가졌음을 입증했다. 이 수정제 목걸이는 재질에 있어 수정과 금이라는 차이가 있으나 그 구성양식에 있어 경주시 노서동의 5∼6세기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보물456호인 금제목걸이의 시원이 되는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 이 시기 가야의 문화가 신라에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해준다.
한대의 전서체로 사용된 장소, 동정의 무게등을 표시한「서구궁정 용일두 병중 십칠근칠량 칠…」 이란 명문이 있는 BC 2세기「유명동정」에는 육안으로는 현재 15자의 글자만 보이는데 앞으로 X선 투시기로 사진을 찍어 판독할 경우 더 많은 글자가 나올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 제조연대가 확실한 동정의 출현으로 가야국 성립시기를 AD 3세기가 아닌 AD 2세기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기웅 문화재 전문위원은『이 명문동정이 기원전에 만들어져 가야지역으로 흘러 들어오는데는 1세기에서 2세기의 전래시간이 필요하므로 동정이 출토된 고분은 3세기에 만들어졌으나 적어도 2세기에는 가야로 흘러 들어 왔다』고 주장했다. 또 함께 출토된 철복도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줘 가야 구야국의 출현 시기를 앞당겨준다는것이다.
한편 이번 발굴에서 확인된 무덤들은 3∼4세기대의 가야묘제의 실상을 밝혀 주고 있다. 특히 토광목곽묘의 경우 분묘축조후 파분하여 화장한 특수 화장유구 2기를 확인하게 됨으로써 한국묘제연구의 주요 과제를 제공했다.【최성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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