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료제청 등 권한막강… 2인자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총리(56)가 러시아정계에 새로운 실력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체르노미르딘은 지난 92년 12월 총리로 임명될 때만 해도 당시 보수파들이 장악한 최고회의(의회)의 급진개혁정책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얼굴마담」으로 간주됐었다.
실제로 그는 총리임명 한달만에 가격자유화조치를 일부 취소하고 가격통제정책을 추진하는 포고령을 발표했으나 보리스 표도로프부총리겸 재무장관등 급진개혁성향각료들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이를 철회하는등 총리로서 영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9월 급진개혁파의 기수 예고르 가이다르가 제1부총리로 내각에 복귀하면서 그는 경제정책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가이다르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체르노미르딘이 「실세총리」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지난 12·12총선. 그는 가이다르의 러시아선택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지리노프스키의 자유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정계내 독자적인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옐친대통령이 처한 상황도 체르노미르딘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신헌법통과로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됐다고는 하나 지난해 10월 사태처럼 탱크를 동원, 보수성향의 의회를 강제해산할 수 없고 총선에서 패배한 급진개혁파를 다시 등용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극우민족주의세력인 지리노프스키정파와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도,공산당과 손을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옐친은 이같은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군산복합체와 관료세력을 대변하고 있는 체르노미르딘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체르노미르딘은 지난해 최고회의가 옐친을 탄핵하려 했을때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여줬으며 옐친이 무력으로 의회를 해산할때 TV에 나와 책상을 치면서 지방지도자들에게 대통령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총선때는 일부러 휴가를 떠나는등 현재의 각 정파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는등 정치적 제스처를 쓰면서 나름대로 권력투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엿보아 왔다.
결국 신헌법에 따라 각료임명에 대한 제청권이 총리인 자신에게 돌아오자 체르노미르딘은 이를 이용, 급진개혁파를 내각에서 몰아내고 자신의 측근들을 주요 포스트에 임명하는등 옐친 다음으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그는 57년 정유공장의 기사에서 출발, 85년 국영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의 사장에 임명되기까지 줄곧 석유와 가스분야의 전문관료로 입지를 굳혀왔다.
또 82년 소련가스공업부차관, 85∼89년 동장관을 거쳤으며, 92년 5월 러시아 연료에너지담당 부총리를 역임한 바 있다.
그는 공산당식 경영기법과 처신에 능숙하며 공개석상에서는 별로 말이 없으나 사석에서는 말투와 행동이 거친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경제의 70%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군수산업과 에너지산업, 국영기업 및 국영농장등의 간부들은 그가 「제2인자」로 부상하자 환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 새로운 경제개혁은 러시아와 국민, 전통에 따라 입안돼야 한다며 서구식 자유시장체제는 러시아에 이익보다는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러시아정부의 개혁정책이 궤도를 대폭 수정하는것이 확실해지자 제프리 삭스와 안더스 아스룬트등 러시아개혁정책을 자문해주던 서방의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각각 사임하기도 했다.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전소련공산당서기장을 연상케하는 외모와 풍채를 가진 체르노미르딘이 앞으로 「러시아식」경제개혁을 어느정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만약 그가 가시적 성과를 거둘 경우 옐친이후의 차기대권을 노릴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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