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와 친구 인연… 본당 확장 공사로 도쿄 분쿄구 신조지(진정사)의 데라다(사전강순·75)주지는 1백년이란 긴 망각의 세월을 거슬러 김옥균의 삶과 죽음을 만나게 해주는, 이 세상의 유일한 통로이다.
그는 김옥균 유해의 일부가 유일하게 묻혀 있는 신조지를 1945년부터 운영해온 주지이다. 그와 김옥균의 인연은 이미 1백여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 인연은 숙명적이라고 볼 수 있다.
『1882년 3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김옥균은 4년 전에 한국에서 알게 된 일본인 승려 오쿠무라를 통해 데라다 후쿠주(사전복수)를 소개받습니다. 김옥균은 이 후쿠주를 통해 일본의 거물정치인 후쿠자와 유기치(복택유길)를 소개받지요. 후쿠주는 일본 최초의 대학인 게이오(경응)대학의 설립자 후쿠자와의 애제자였습니다』
「개인적인 일은 절대 묻지말라」고 주문한 데라다주지는 김옥균에 대한 그의 풍부한 「보따리」를 풀어놓으면서도 후쿠주의 성을 숨기고 있었다.
후쿠주의 성은 데라다(사전)였고, 후쿠주는 데라다주지의 증조부였다. 김옥균은 그의 증조부와 절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일본의 김옥균연구전문가인 금병동씨(조선대강사)로부터 취재한 기자의 확인질문에 그는『그게 중요한 것이냐. 개인적인 일은 묻지말아달라』고 되풀이했다.
그는 신조지의 본당 확장공사로 없어질 운명에 있던 김옥균의 유해가 묻힌 유일한 진묘를 옮긴 장본인이기도 했다.
『묘 안에 들어있던 항아리와 폭격으로 윗부분이 부서진 묘비를 함께 객사 뒤쪽으로 옮겨 지금의 묘를 조성했지요』
그는 또『이 묘에는 머리카락만 묻혀 있다』고 확인했다. 지금까지 신조지의 묘에는 김옥균의 「머리가 묻혔다」는 설과 「머리카락이 묻혔다」는 설이 엇갈려 왔다.
그는『양화진에서 효수된 김옥균의 머리를 훔쳐낸 오야부의 딸이자 신조지에 다니는 불교신자였고, 김옥균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가이후지(1981년 사망) 한테 생전에 직접 들어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가이후지는 『가져오는 동안 그분의 머리가 부패해서 머리카락만 모셨다』고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중간 규모의 사찰인 신조지(1410년대에 설립)의 주지 집안에서 태어나 승려가 된 그는 도쿄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45년 주지직을 계승할 때까지 모교에서 강사를 하던 사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오는 8월 김옥균과 절의 역사를 다룬 저서 「보리수 그늘 밑에서」를 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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