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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이씨와 결혼후 「본격 큰손」/장영자·이철희 부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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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이씨와 결혼후 「본격 큰손」/장영자·이철희 부부의 삶

입력
1994.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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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언변·사교 출중… 두차례 이혼/이/육사2기·중정차장등 “정보통” 장령자·이철희부부는 그 큰 손만큼이나 파란곡절의 인생을 살아왔다.

 장영자씨는 1944년 전남 목포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3남4녀 가운데 3녀로 태어나 9세때인 53년 부모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국교졸업후 가톨릭계학교인 계성여중고를 마치고 62년 경기실업초급대학 보육학과에 진학했다. 초급대를 졸업한후 진로를 고심하던 장씨는 숙명여대 교육학과 3학년에 편입, 66년 2월에 졸업했다.

 장씨는 학창시절 학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듯 줄곧 성적이 하위권에 머무른것으로 기록돼있다. 그러나 장씨는 이미 어려서부터 사교술과 언변이 뛰어나 계성여중의 학적부품행란에는 『평소 말이 많고 허영심이 강하며 준법정신이 희박하고 자기현시욕이 강하다』고 기재돼있어 눈길을 끈다. 장씨는 숙명여대를 졸업하기직전인 66년 1월 첫남편인 김수철씨와 결혼, 1남 1녀를 두었으나 74년 4월께 김씨와 별거에 들어갔고 77년에 법적으로 정식이혼했다. 이혼이유에 대해 장씨는 김씨가 경제적 능력도 없는데다 이민준비를 위해 남미에 갔다가 풍토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김씨는 장씨가 허영심이 너무강해 도저히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자신이 자녀를 기르기로 하고 헤어졌다고 말한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그후 77년 사업가 홍모씨와 재혼했다가 9개월만에 헤어진다음 독신으로 지내다 79년 평소 절에 다니며 알고 지내던 장모 보살의 소개로 당시 유정회의원이던 이철희씨를 만나 이듬해 2월 해남 대흥사에서 이서옹종정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장씨는 특히 5공초기 사정서슬이 시퍼렇던 82년 2월 서울 장충동 싸파리클럽에서 정·관계인사들을 대거 초청한 가운데 초호화판 결혼식을 다시 올려 입방아에 올랐다. 후에 이들의 사기사건이 드러나자 주위에서는 이들의 결혼에 대해 「허영심에 들뜬 손 큰여자와 공작정치의 전문가와의 절묘한 만남」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장씨는 이때부터 형부이자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처삼촌이던 이규광씨의 위세를 등에 업고 거액을 끌어들이다 구속돼 징역 15년씩을 선고받았다. 평소 골동품에 관심이 많았던 장씨는  78년 신안해저유물을 몰래 사들였다가 적발돼 구속된 적도 있었다.  92년 가석방으로 출감한 장씨는 지난해 유명탤런트 김주승씨를 사위로 맞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철희씨는  1923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국교를 졸업한후 40년 일본으로 건너가 진학준비를 하다가 우체국고용원으로 일했다. 이씨는 그후 일본 나가노 정보학교를 다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조사결과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해방후 육사 2기로 임관, 61년 육군방첩부대장을 맡는등  주로 군정보요직을 거친 이씨는 현역으로 중앙정보부에 파견돼 78년 중정차장까지 지냈다. 이씨는 김대중씨납치사건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장씨와 혼인신고를 하기전까지 법적결혼을 한적은 없으나 65년 당시 유명여배우 김모씨와 한때 동거했고 75년에는 일본여성과도 살림을 차려 아들1명을 둔것으로 전해졌다.【윤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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