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망명 20여명… 김종휘씨는 「도피」해당 우리나라를 떠나 망명길에 오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의「사실상 망명」을 계기로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으나 정확한 규모와 인적사항은 파악되지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엄밀한 의미의 망명과 이민, 장기해외여행, 해외도피등의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모두 망명으로 불리는 경향이 있다. 이 가운데 형사상 범죄를 저지르고 외국으로 도피한 경제사범등에 대해서는 법무부등에서 파악하고 있지만 그외의 경우는 대체로 반체제인사로 분류돼 정보기관의 몫이 되어왔다.
이번의 김씨 경우도 정치적 망명이라기 보다는 법률적으로 해외도피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순수한 의미로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 사람은 20여명 내외에 불과하나 김씨의 경우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망명인사는 2백여명선을 넘어설 것이라는게 관계기관의 추정이다. 그러나 주요 망명대상국인 미국이나 독일등 정부도 당사자의 신변보호등을 이유로 인적사항등을 비밀에 부치는게 관례여서 정확한 실정파악을 어렵게 하고있다.
망명의 시조격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영원한 행방불명」상태에 있는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이다. 김씨는 유신이후 박정희전대통령과 사이가 나빠지자 73년2월 가족들과 함께 몰래 미국으로 가 「망명1호」를 기록했다. 그러나 김전부장도 형식적으로 이번의 김씨경우 처럼 바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지않고 「영주권취득▦시민권취득」이라는 이민의 형식을 밟았다.
엄밀한 의미의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 사람으로는 일반인에게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73년6월 주미공보관장으로 있다 미국에 망명한 이재현씨이다. 중앙정보부에서 자신을 수사대상에 올린 것을 알고 정식으로 망명길에 오른 이씨는 반유신투쟁에 앞장섰으며 현재 미일리노이주의 웨스턴 일리노이대학에서 언론학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미대사관 참사관으로 있다가 76년12월 미국에 망명한 김상근씨도 이와 유사한 케이스인데 김씨는 박동선스캔들과 관련돼 한때 한미간의 외교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들과 다소 경우는 다르지만 후일 북한으로 기운 최덕신 최홍희씨도 넓은 의미의 망명인사로 볼 수 있다. 육사교장 외무장관 천도교교령을 지낸뒤 3공시절 박전대통령과 등지게 되자 미국망명길에 오른 최덕신씨는 반한투쟁을 하다가 평양을 방문, 북한이 지원하는 조선종교인협의회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또 최홍희씨는 6군단장 대한태권도협회회장등을 지낸뒤 72년1월 캐나다로 이민간뒤 곧 반한단체를 구성, 전유엔대사 림창영씨등과 활동하다 80년 입북했는데 81년 아들이 전두환 전대통령암살음모와 관련, 캐나다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5공이후의 망명자로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수배를 받고 밀항한 윤한봉씨가 있다. 윤씨는 81년4월 마산에서 화물선을 몰래 타고 미 LA에 도착, 12년간 망명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5월 귀국했다. 또 지난 91년 평양에서 있었던 범민족대회에 전대협대표로 참가했던 성용승군등 2명이 독일정부에 망명을 신청, 아직까지 독일에 머무르고 있다. 이밖에 재야단체에서는 동백림사건이후 20여년간 귀국치않고있는 음악가 윤이상씨, 역시 반한인사로 몰려 귀국치 못하고있는 독일 뮌스터대학교수 송두률씨등 인사들도 해외망명인사로 규정, 이들의 귀국운동을 추진하고있다.【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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