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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과 교과서/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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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과 교과서/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 북)

입력
1994.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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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이 지난 20일 문익환목사 유가족에게 보낸 조전을 읽어보면서 좀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나는 문익환목사가 뜻하지않은 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전문은 모범적이요, 남에서도 이상하게 느낄 대목이 아니다. 좀 엉뚱한 생각은 다른데서 비롯된것이 아니다. 남북문제연구소는 「교과서를 통해본 북한」이라는 책을 지난20일 냈다. 이 책은 북의 유아원, 인민학교(남의 국민학교해당) 고등중학교(6년제)의 교과서를 분석 한것이다. 그 결론은 수령부자의 우상화가 고등중학 1∼3학년 국어교과서의 경우 단원의 42%가 넘는다는 것이다.

 북의 국어교과서에는 수령과 지도자를 어떻게 존경해 표현해야 하는가의 단원이 있다. 만약 수령이 어느 고등중학 2년생에게 『내가 존경하는 문목사에게 보낼 조전을 작성해보라』고 했다면 어떤 전문이 되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것이다.

 북의 고등중학 2학년 국어 제13과 「말하기와 언어예절」을 보자. 『우선 경애하는 수령원수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에 대한 흠모의 정을 나타내기 위한 말마디들을 잘 골라써야 한다. 이를 위하여서는 「어버이」 「친히」 「몸소」 「께서」 「께」 「시」 「님」과 같은 존경하는 말마디들을 잘 찾아 써야 한다』고 되어있다. 이런 존경어에 대한 과목은 인민학교 3학년, 국어제2과에서 벌써 시작된다. 수령부자에 대해서는 『「친히, 몸소, 손수, 삼가, 교시, 말씀, 만수무강, 계시다, 옵니다, 모시다」와 같은 높임말을 써야 합니다』고 적혀있다.

 수령은 6살 아래인 문목사에게는 존경이나 흠모의 정은 없었던듯 하다. 조전에 존경어가 하나도 없는것이 그렇다. 그러나 만약 북의 고등중학생에게 존경어 조문을 쓰라고 명령했다면 굉장한 조문이 나왔을 것이다.

 명령이나 허락이 없다면 「께서」 「님」등의 존칭격은 수령부자와 그 직계가족이외는 쓸수가 없는말이다. 그래서 「조선말 대사전」의 빈도수 조사에서 「님」은 「하다」라는 말이 4만6천6백12번 사용될 때 4번 사용되는 말이며 「께서」는 두번이상 쓰지않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모든 교과서 단원의 시작은 수령과 지도자의 「말씀」으로 시작된다. 고등중학 4학년 생물 교과서 「소화와 흡수」 단원의 첫 줄은 지도자의 「말씀」이다.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이가 튼튼해야 합니다』 고등중학 6학년 자동차 실습에 관한 교과서 제3장 첫 줄에도 수령의 「말씀」이 있다. 『자동차를 잘 운전하려면 운전사가 자동차의 구조와 그 운전방법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북의 국어 교과서에서 또하나의 특징은 남과 미국, 일본에 대해 비속어를 사용토록 강제하는것이다. 인민학교 4학년 국어 제21과에는 『원쑤놈들에 대해서는 「머리」는 「대가리」, 「죽다」는 「뒈지다」, 「먹다」는 「쳐먹다」등의 속된 뜻같은 말을 써서 원쑤놈들의 더러운 몰골을 나타내야 한다』고 되어있다.

 고등중학교 2학년 국어13과에는 『계급적 원쑤들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키다리 미국놈」, 「미국놈의 대가리」 「왜놈의 모가지」등 낮잡아 이르는 말을 많이 쓴다』고 적혀있다.

 왜 이런 특이한 현상이 북에서 벌어지는 것일까. 북의 헌법 43조는 『국가는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구현하여 후대들을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는 견결한 혁명가를, 지·덕·체를 갖춘 공산주의적 새 인간으로 키운다』고 되어있다.

 수령과 지도자,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만 「님」자를 붙여야 「공산주의적 새 인간」이 되는 것일까. 미국과 일본에 수교를 원하면서 「미국놈 대가리」 「왜놈의 모가지」라고 해야만 하는것일까.

 수령이 80세가 되고 지도자가 50세가 넘은 92년4월15일부터 북의 탁아소에서는 「수령 원수님」 호칭이 「할아버지 원수님」, 지도자는 「아버지 원수님」으로 격상됐다. 밥을 먹고나서도 말을 떼는 2∼4세 사이 유아는 「할아버지」 「아버지원수님」을 잘 말해야 칭찬을 받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령이 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이며 집단의 생명을 대표하므로 모든 혁명과 건설은 반드시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만 승리한다』는 절대복종의 논리를 전개키 위해서다. 다시말해 수령유일체제를 갖추기 위해서 또한 이 체제를 세습키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수령과 지도자만 생각하는 「인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과 일본, 미국등 북과 미수교국은 개방의 문을 열기 전에 수령의 교과서를 면밀히 검토한후 이를 고친후에 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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