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족 얻지못할땐 미련없이 사표/창의력발휘·자율보장되는 직종 선호 구세대에게 직장이 냄새나는 여객선이라면 신세대에겐 즐기기 위해 승선한 호화유람선이다.
구세대에게 직장은 인생이란 버거운 짐을 지고 노년이라는 목적지까지 가야하는 숙명적인 항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쾌감을 맛보는 즐거운 여정이며 서비스가 시원찮으면 언제든지 하선해서 다른 배로 바꿔 탈 수 있는 선택적인 여정쯤으로 직장을 생각한다.
구세대가 체념어린 어조로 「직장」이란 표현을 쓸때 신세대는 「일」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일」은 「직장」에 비해 보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주체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지난 여름 2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섹스코미디영화 「그 여자 그 남자」는 현대 남녀의 성관념뿐 아니라 직업관도 신세대답게 묘사하고 있다.
「그 남자」이경영은 방송사 보도국 부고담당기자(실제로는 전담기자가 없다)다. 부고라는 하찮은 일을 하면서도 그는 방송기자로서 돋보이는 인기부서로 옮겨야겠다는 치열한 출세욕이 없다. 다만 함께 밤을 즐길 수 있는 파트너와 가족의 간섭을 피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보장되는 적당한 일이면 족하다.
그가 일에 대해 보이는 열정이란 암투병중인 오드리 헵번의 부고기사를 미리 만들어놓고 숨질 날을 학수고대하는 정도다. 「그 여자」강수연도 일에 관한한 마찬가지다. 신생아실 간호사인 그에게 직업에 대한 보람이나 소명감은 없다. 다만 직업이 주는 자유로운 생활의 보장을 위해 일할뿐이다.
신세대에겐 미래라는 거창한 약속보다 바로 지금 느끼는 만족감이 더욱 소중하다. 때문에 소위 의사 판·검사 변호사 박사등 「사」자 돌림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 젊음을 불사르기보다는 입사하기 쉽고 일하면서 적당히 자극을 받을 수 있으며 자신의 창의력으로 주어진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작은 회사를 선호한다.
방영중인 KBS 1TV 일일극 「당신이 그리워질 때」의 박지영(인테리어디자이너) KBS 2TV 일요아침드라마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손지창(CF회사 조연출) 영화 「그대안의 블루」의 안성기와 강수연(디스플레이 디자이너)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의 오연수(잡지사 기자)를 비롯, 최근의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신세대의 직업은 CF제작사나 방송사의 PD, 리포터, 작가, 기획자, 디자이너등 자유직이거나 적어도 자유가 보장되는 직종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KBS 2TV 「연인」의 이효정처럼 「박봉에 격무」인 검사를 택해 상사의 회유나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직업의 본령에 충실한 신세대도 있다. 어머니에게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므로 잘해주어야 한다」고 당당히 주장하면서 애인인 신애라(스포츠신문 연예부기자)의 직업적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며 팩스로 연애편지를 보내고 스포츠를 즐기는 전형적인 신세대면서도 그는 어느 구세대못지않게 사명감이 투철하다.
그러나 그 역시 검사직을 수행하면서도 권위적이기보다 신세대답게 즐겁고 경쾌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자신을 위해 일하는 신세대는 구세대와는 달리 직장 상사를 무조건 존경하거나 그에 종속되는것을 거부한다. 신세대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는것은 관례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편하기위해서다.
KBS 2TV 「신 손자병법」의 신세대사원들(김승환 김은정 신은경등)이 다소 모자라는 이사(오현경)앞에서 「꼬리를 내리는」것도 자기성취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즉 「모두들 저마다의 다른 생각이 있듯 넌 너대로 난 나대로」(모자이크의 노래 「너의 사고방식」가사중) 세계가 있으며 그래서 이들은 「비교하지마 나를 다른 사람과」라고 호소한다.
그룹 015B(서울대신문학과와 컴퓨터공학과), 가수 윤종신(연세대 국문과), 신해철(서강대 철학과), 개그맨 서경석(서울대 불문과) 이윤석(연세대 국문과)등으로 대표되는 일류대학출신 연예인들의 출현도 남과 나를 비교하지않는 신세대직업관의 맥락에서 쉽게 해석이 된다.
그런가하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는 음악을 하는데 굳이 대학갈 필요가 없었노라고 고졸학력을 스스럼없이 내세운다.
직업에 관한한 남녀구별이 없는것도 신세대의 특징이다. MBC TV 미니시리즈 「파일럿」의 채시라는 항공기 기내설비설계사였으며 SBS TV주말극 「일과 사랑」에서 대학생 나현희는 보컬그룹의 리드싱어로 보컬활동에 빠져있다.
「결혼이야기」에서 말단성우인 심혜진은 라디오음악프로의 고정게스트로 발탁되자 남편(최민수)이 서운해할만큼 기뻐한다. 「최소한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고 자기 일에 의욕을 갖고 있는 그는 업무상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따돌린 남편을 몰아세운다.
「신 손자병법」의 신은경은 이사로부터 매출실적이 낮다고 공개석상에서 꾸중을 듣고도 위로하는 동료에게 『사표는 왜 내니. 악착같이 해서 정상에 오르고 말거야』라고 투지를 드러낸다.
드라마 「당신이 그리워질 때」의 박지영은 결혼후 직장생활을 반대한다는 이유때문에 결혼을 고려하던 스포츠센터 사장아들(김명수)과 미련없이 헤어지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한다.
신세대는 일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진취적이다. 일단 선택한 일이 자신의 생리와 맞아떨어질 때는 관성적으로 일하는 구세대가 상상할수 없는 폭발적인 힘과 집중력을 나타낸다.【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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