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불편해도 활달… 재수끝 영광/부모·담임 눈물겨운 뒷바라지 『고3때 담임선생님과 어머님께 오늘의 영광을 드립니다』
뇌성마비장애인으로는 서울대 개교이래 최초로 합격한 정훈기군(20·서울 화곡고졸)은 22일 해맑은 표정으로 소감을 말했다.
5급뇌성마비장애인인 정군이 오늘의 영광과 밝은 마음을 지닐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과 정군처럼 몸이 불편했던 고3 담임선생님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어머니 김묘분이씨(40)가 난산으로 태어날 때부터 말을 더듬고 양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정군은 지난해도 서울대 농학과에 지원했다 낙방, 광운대 수학과에 수석합격했으나 휴학후 임산공학과에 합격했다.
부모의 일생은 오로지 천형을 안은 아들을 위한 삶이었다. 견인업을 하는 정용정씨(45)부부는 수술비마련등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집을 팔고 재산을 쏟아부어 지금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59의 8 방두칸짜리 14평 전셋방만을 가지고 있다. 정군이 3살될 때까지도 말을 못하고 수족이 불완전한 것을 다른 애들보다 단지 발달이 조금 더딘 줄로 알고 있다가 뒤늦게 불구인 것을 알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정군이 지난해 서울대에 낙방한 것은 자주 시험지와 사인펜을 떨어뜨려 시간이 부족한 탓도 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린 어머니 김씨는 올해는 서울대에 부탁, 학교측이 시험전날 기숙사를 제공하고 큰 책상을 마련해 줬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부모가 손발이었다면 고3담임이었던 화곡고 현길섭교사(49)는 정군의 가슴과 머리가 돼줬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좀 불편한 현교사는『훈기는 일반학생들보다 오히려 성격이 밝았다』며『몸이 불편하다고 절대 특별히 대하지 않았으며 단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줬을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현씨는 정군을 질책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같이 몸이 불편하기에 감수성이 예민한 정군에게도 담임선생님의 충고는 올곧게 받아들여졌다. 담임선생님은 정군이 재수할 때도 정군집 가까운 학원에 장학생으로 주선해 줬으며 한달에 한번씩 학교로 불러 진로와 인생상담을 계속해 왔다.
국토의 70%가 산이어서 통일이 되면 일할 분야가 많을 것으로 생각해 임산공학과를 지원했다는 정군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주저없이 담임선생님을 들었다. 정군의 꿈은 공부를 열심히 해 연구소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는것이다. 정군은 『 나의 합격이 다른 지체부자유자들에게 조그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조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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