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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노벨경제학상수상/미 로버트 포겔 교수(KBS 신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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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노벨경제학상수상/미 로버트 포겔 교수(KBS 신년대담)

입력
1994.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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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간섭 없어야 경제 잘돌아가”/정치안정·부공정분배 중요/아태블록 10년내 진전예상/「사람투자」만이 기술주도국 보장/미개발산업 개방해야 발전효과… 농민등 피해층은 끝까지 보살펴야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세계를 휩쓸고 있는 「국제화」 「개방화」의 격랑속에서 우리경제가 침몰하지 않고 순항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경제사분야에 계량분석기법을 도입, 이른바 「신계량경제사」를 성립시킨 공로로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시카고대 로버트 포겔교수는 정부의 규제완화가 한국경제가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지적했다. 포겔교수는 KBS신년기획시리즈 「세계석학에게 듣는다」 두번째편 「한국경제의 성공비결」(11일 하오 7시35분 방영)에서 이같이 강조하고 경제발전에 이어 정치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경제의 앞날을 낙관한다고 말했다.

 포겔교수와 연세대 경제학과 이제민교수와의 대담내용을 요약한다.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거의 정부가 주도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문제를 낳기도 했는데 교수님께서는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면 어떤 문제가 따른다고 보십니까.

○성장도울 제도마련을

 ▲우선 정부가 경제를 위해 해야할 일은 정치적 안정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정치가 불안하면 경제도 불안해지고 그렇게 되면 결코 경제성장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가 해야할 일은 규제를 푸는 것입니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등 동남아시아국가들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정부가 간섭을 하면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습니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간섭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추진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갑자기 자율권은 주면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동안 권위주의정부 아래에서 갖가지 혜택을 받아 확고한 위치를 다진 대기업들이 더 더욱 혜택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재벌들에게 공수표를 쥐어주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자율을 줄 수도 없고, 주지 않을 수도 없는 이러한 한국의 딜레마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한국기업의 족벌체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제아래서는 무엇보다도 대기업에 대한 정부정책이 제대로 서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성장을 통해서 특정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혜택을 받지는 않았는지 늘 살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20세기초반의 30, 40년간은 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정부가 육성하고 지원해주는 산업합리화 정책덕분에 대기업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서 굳이 대기업이 아닌 작은 기업들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산업들이 떠올랐고 대기업의 수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대기업을 필요로 하는 산업은 정책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대기업에 밀어주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또 다른 부문을 밀어줘야 합니다.

 두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득분배의 문제입니다. 20세기 초반과 1990년의 미국을 비교해보면 20세기 초반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은 90년에 와서는 13%나 증가했습니다. 물론 그동안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경제성장에서 오는 증가분은 7.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부분은 소득재분배정책의 성공에 따른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정부는 어떤 제도를 실시해야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 또 어떻게 해야 소득을 정당하게 분배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둬야할 것입니다.

 ―요즘엔 모든 경제문제들이 국제적인 조건속에서 결정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선진국들의 기술경쟁력이 21세기에는 어떻게 될지가 우선 궁금해집니다. 아직은 미국이 기술선두주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21세기에는 일본에 선두주자 자리를 내주게 되지 않을까요. 

○고급두뇌 공급에 사활

 ▲미국이 계속 기술주도국으로 남아있게 될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은 기술주도권을 유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교육이지요. 교육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기술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일본은 이 점에서 미국에 뒤처져 있습니다. 일본이 더 이상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인적자원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주도권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인들이 점점 레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는 있으나 미국은 적어도 앞으로 1세기 이상은 기술주도권을 쥐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이 기술주도권을 갖는 것도 세계경제질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2차대전이후 미국을 위시한 여러 국가들은 다자간 무역 및 금융체제를 구축했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성장과 번영을 얻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엔 어떤 국제경제질서가 출현할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다자간 협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물론 다자간 협상은 지속될겁니다. 저는 미의회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압도적으로 승인하는 것을 보면서 다자간협상에 대해 보다 희망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유무역체제로 인해 대부분 국가들은 이익을 볼 수 있겠지만 내부적인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도 있을 겁니다. 이런 나라들은 정부가 신경을 써야죠. 손해보는 계층이 국제경쟁력이 없는 계층이라면 보다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농민이겠죠. 무조건 따르라고 농민들에게 강압적으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이해시키고 책임져주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긍정적효과도 예견돼

 ―NAFTA법안이 통과된 것은 관련국가끼리는 신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겠지만 다른 국가들에는 지역주의의 강화라는 우려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NAFTA가 지역주의를 심화시킬 염려는 없을까요.

 ▲자기나라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들 보호주의정책을 펴고 있는 마당에 NAFTA와 같은 지역블록은 그 지역 안에서만큼은 국가단위의 보호장벽을 허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NAFTA가 점차 아시아 태평양지역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12월에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회의를 보면서 NAFTA가 그런 형태로 발전했으면 하고 기대를 했습니다. 걸림돌이 있다면 정치적 문제일 것입니다. 따라서 정상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10년정도 지나면 좋은 결과를 맺을 것으로 봅니다.

 ―새로운 경제질서를 이야기할 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개발도상국문제입니다. 개발단계에 있는 산업이나 경쟁력이 없는 산업을 보호해야 하는 처지인 한국으로서는 개방이라든가 지역주의 또는 다자간 무역주의가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모든 개도국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미국 역시 개발과정에 있던 산업에는 보호주의 정책을 펴왔었는데 개도국의 산업보호정책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보호일변땐 경쟁못해

 ▲미발달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설득력이 없습니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에 계속 투자하면 그 산업은 살려도 전체 경제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1백년전만 해도 전체 미국 노동력의 80%가 농업에 종사했었지만 이제는 불과 2%밖에 되지 않습니다. 미국은 농민들이 한시라도 빨리 경쟁력이 없는 농업에서 떠나도록 했고, 많은 저항과 갈등을 초래했지만 결과적으로 농민은 이만큼 잘 살게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명백히 쇠퇴하는 산업이 아닌 유치산업의 경우에는 경쟁력이 생길 때까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규정은 규정입니다. 방위산업을 예로 들어봅시다. 어느 나라든지 자주국방을 위해 방위산업만큼은 보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자동차산업은 왜 개방합니까. 자동차야말로 전쟁이 났을 때 무기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말입니다. 제 말은 보호주의를 주장하자면 명분은 얼마든지 있다는 얘깁니다. 개발을 위해서 보호주의를 편다는 것은 별 효과가 없습니다. 차라리 개방을 해서 미개발산업을 촉진시키는 것이 국제경쟁력을 키우는데 훨씬 효과가 있습니다.

 ―대단한 개방론자이신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경제는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었고 지금까지도 회복이 느린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건설경기가 침체국면에 놓여있는데서 비롯되는 부분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적당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관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한국의 장래 낙관적

 ―일본과 유럽은 어떻습니까.

 ▲일본과 유럽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산업구조개편단계에 와있습니다. 그런데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점점 하락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예전의 성장률을 회복할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잡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당분간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한국경제를 낙관적으로 보는군요.

 ▲예, 한국의 장래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입니다. 개인소득이 높아지고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들이 민주화과정을 거쳐 경제성장을 가속화시키는걸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대만과 한국이 그랬고 일본도 그런 셈이죠. 중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정리=김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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