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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익태작곡상 수상영광 임지선씨(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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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익태작곡상 수상영광 임지선씨(인터뷰)

입력
1994.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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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화된 현대문명·소외 표현”/“수상계기 나만의 음악언어 추구”/제1회 안익태작곡상 수상­임지선씨 「교항시­아킬레스의 방패」 「안익태작곡상」의 영예의 첫 수상은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속에 젊은 여성작곡가 임지선씨(33)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으로 결정된 교향곡 「교향시―아킬레스의 방패」에서 응모자의 뛰어난 재능과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 한국음악에 대한 풍부한 가능성을 읽었다.

 임지선씨는 『이 곡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작품이다. 미국의 스승들은 이 곡을 칭찬했지만 나는 귀국한 뒤로 한동안 침체기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벅찬 수상을 계기로 열심히 그리고 본격적인 작곡을 해야겠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대한 수상결정으로 조국의 무관심 속에 이국 스페인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 선구적 작곡가의 뜨거운 조국애와 음악에 대한 열정이 29년만에 다시 후배작곡가를 통해 이 땅에 피어나게 된 셈이다.

 이 작품은 그가 미국유학시절 영국시인의 동명의 시집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다. 그는 『황폐화된 현대문명과 인간소외를 다룬 W·H·오든의 시를 친구의 하숙방에서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도서관과 강의실, 그리고 교내 음악회를 오가는 단조로운 유학생활을 힘겹게 견디던 나에게 그 충격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울림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작곡의 동기를 밝혔다. 이 곡은 2년간의 구상을 거쳐 89년 3개월간 하루 7∼8시간씩 오선지와 싸운 끝에 얻어졌다.

 이 곡은 「교향시―아킬레스의 방패」를 읽고 느낀 긴장감과 충격이 전체 3악장 속에 용해돼 있는 14분 안팎의 교향곡이다. 6가지 화성구조를 기본 골격으로 3악장이 각각 독립적인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이 교향곡은 관악기와 타악기가 어우러진 끊임없는 음색의 변화가 대비·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무조성의 현대음악이다. 

 경기민요와 농악의 리듬을 차용한 오스티나토(반복리듬)가 전체를 이끌고 있는 2악장이 특히 인상적인데 이 부분이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와 긴밀히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출품작들 중에서 가장 교향곡의 정신에 충실하고 음악적 토대가 탄탄한 점이 주목을 끌었다』고 평가했다.

 서울 태생인 그는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음악에 본격적으로 눈뜬 것은 정신여고 2학년때 「노래선교단」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합창단 연습 도중 완벽한 화음이 빚어내는 음악적 희열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음악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합창단 지도교사의 권유에 따라 그는 연세대 작곡과에 진학했다. 그는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 대학원에 유학하며 석·박사과정을 밟았고 귀국해서는 연세대와 숙명녀대에 출강해 왔다.

 그는 『어차피 내 작품을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다. 나는 나만의 음악언어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이런 고집이 이제까지 나의 작업을 이끌어주는 힘이었지만 머리 속에서 완벽한 구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한 소절도 그릴 수 없는 습관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박천호기자】

◎수상소감/“내 음락의 반성과 도약기회로”

 음악은 무엇인가. 사회에 봉사하도록 강요된 가혹한 삶인가, 아니면 개인의 실존적 아픔을 달래 주는 부드러운 위안인가.

 내 음악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후자에 속해 왔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광장으로 나아가 동시대인과 공유하는 사회적 자산이기 보다는 가능한 한 상처를 적게 받자는 폐쇄된 공간의 자위책이었다.

 당선소식을 듣고 나는 마치 발가벗긴듯이 부끄러웠지만 사실 그 부끄러움보다 기쁨이 앞선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번 수상은 내게 속물적 근성과 치열한 예술적 지향의 갈등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 갈등의 확인은 그것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모순투성이의 보잘것 없는 내게 그리고 내 음악에 이처럼 귀한 상을 준것은 나의 한계를 더 첨예하게 직시하고 이제는 밀실을 박차고 나와 시대를 공유하라는 사회의 부드러운 포옹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그 화해의 몸짓에 선뜻 다가설 용기는 없지만 천천히 다가서고 싶다. 이제부터 그 방법을 찾는것이 나의 과제이다.

 우선 나의 음악세계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주신 한국일보사와 부족하기만한 나의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음악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항상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 주시는 여러 선생님들과 인디애나 대학때 지도교수였던 존 이튼 선생님께는 더욱 각별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임지선】

◎심사평/응모곡 전통적 관현악법 미숙 등 아쉬움

 제1회 안익태작곡상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누어 2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11곡의 응모작중에서 우선 추려낸 것이 5곡이다. 예심에 통과한 5곡이 2차 심사인 본선의 심사대상이 됐고 투표에 앞서 충분한 토의를 거쳐 참으로 다행스럽게 심사위원 전원의 의견일치를 얻어 수상작을 결정지을 수 있었다. 

 예비심사에서는 각 심사위원의 가부를 물어 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은 작품들을 골랐다. 이 과정에서도 큰 어려움없이 우열을 가려낼 수 있었다. 몇몇을 제외한 응모작들의 수준차이가 현저한 탓이었다. 예선에 들지 못한 7편의 작품중에는 공모취지와 내용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 끼어있었다. 

 수상작으로 뽑힌 림지선의「교향시―아킬레스의 방패」(Tone Poem:The Shield of Achilles) 는 다양한 음소재의 배열과 치밀한 구성력, 그리고 3개의 악장을 통해 제시·전개되는 변화와 대비가 큰 기복을 이루며 전체적인 조화가 뛰어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편 진은숙의「상티카 에카탈라」와 윤영숙의「관현악을 위한 만량」도 나름대로 우수한 작품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임지선에게 밀리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하겠다.

 김선하의「교향곡 제1번」과 이동훈의 「교향시―한라산」은 위에서 언급한 세 작품에 비해 훨씬 뒤지며 관현악편성다운 밀도와 현대적인 감각의 보완이 각각 요망된다고 하겠다.

 이번 응모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것 중에서 부족한 점들이 있다면 우선 전통적인 관현악법에 미숙한 점이라 하겠다. 여러 종류의 관현악기를 망라하여 이것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다양한 음색, 음폭, 음량 그리고 악기군과 음역간의 균형과 대비,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기량이 아쉬었다. 그래서 관현악곡임에도 불구하고 실내악곡을 방불케하는 예가 드러나고 있다. 또 연주시간이 제시된 것(20분)에 매우 못 미치는 것은 곧 소재를 다루고 전개하여 음악적 기복을 부각시키고 나아가 형식감을 표출시키는 능숙한 구성력이 미흡한데 기인하리라고 본다. 이외에도 음악의 흐름이 유연하지 못하여 계속성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것도 두드러진 흠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이번 제1회 안익태작곡상 심사를 통해 우리 창작계에 대해 매우 고무적인 전망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수확이라 하겠다.【이성재·심사위원장】

◎심사경위/5명 중견음악인 응모자 이름가리고 엄정심사

 올해로 첫 수상자를 낸「안익태 작곡상」에는 의외로 많은 작품이 응모된데다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았다.

 지난해 3월8일 상의 제정을 알리는 첫 사고가 나간 이후 11월30일 최종 마감일까지 접수된 작품은 모두 11곡이었다. 접수결과 작곡계의 원로, 대학교수, 현역지휘자, 해외활동 작곡가등 예상외로 폭넓은 층의 음악인들이 응모, 그동안 우리 작곡가들이 창작곡을 겨루는 권위 있는「작곡콩쿠르」제정을 절실하게  갈망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차 본심은 심사위원 각자가 5작품에「1, 2, 3…」식으로 순위를 매기고 이 순위를 합계하여 가장 적은 점수를 얻은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 결과, 임지선씨의「교향시―아킬레스의 방패」가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1위를 차지, 영예의 제1회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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