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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통령 키워낸 여장부/정일화 워싱턴특파원(특파원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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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통령 키워낸 여장부/정일화 워싱턴특파원(특파원 진단)

입력
1994.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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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클린턴 모친… 험한인생 딛고 당당 미국대통령 가계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늘 곤혹스럽게 했던 클린턴대통령의 생모 버지니아 켈리여사가 6일 7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지난해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은 후 회복되는 듯하다가 최근 재발해 약물치료를 받아왔는데 새해들어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이날 생을 마친것이다.

 버지니아는 클린턴이 대통령에 출마하면서부터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네 남자와 5번 결혼한 경력을 갖고 있어 과연 이런 사람의 아들이 미국대통령이 될수 있을까와 그렇게 험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대통령감 아들을 키울수 있었는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이후 버지니아는 어디를 가나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때 나는 클린턴의 고향 아칸소주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클린턴의 고향유세와 고향사람들이 어떤가를 알아보려는것이었다. 버지니아여사를 만날 계획도 세웠다. 클린턴 출생지인 인구 불과 2천명의 소읍 호프를 돌아 클린턴이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냈던 하트 스프링에 갔다. 클린턴의 어린시절 친구들이 자원봉사자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언론인을 위한 한 모임에 버지니아여사가 나타났다. 5∼6명의 기자들이 이것저것 물었다. 그녀는 간이의자에 앉아 아주 담담하게 답변했다. 나는 클린턴이나 선거얘기가 아닌 버지니아여사 자신에 대해 질문했다.

 『좀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여사는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다면 5번 시집간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이봐, 그때 나같은 사람치고 두서너번 시집 안 가본 사람 있는지 나와 보라고 해』라고 말했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백악관에 가서 살겠는가』라고 물었을때 여사는 『그가 나를 초청한다면야 가고말고』라고 했다. 약간 검은 얼굴에 굳세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결혼 여러번 한것에 대해 당당하기만 했다.

 버지니아여사는 아칸소주 호프에서 시카고뜨내기인 드와이어라는 클린턴 생부를 만나 결혼했다가 드와이어가 젊은 나이에 자동차사고로 죽는 바람에 세살된 아들 클린턴을 친정부모에게 맡기고 세인트루이스로 내려가 간호원이 되기위한 공부를 한다. 2년만에 고향에 와 온천지대로 관광객이 붐비던 하트 스프링으로 이사한후 거기서 자동차판매상인 클린턴씨를 만나 재혼했다. 술주정이 심했고 총질까지 가끔 해댔던 그와는 한번 이혼했다가 재혼하기도 했으나 클린턴 역시 요절하는 바람에 버지니아는 4번째 면사포를 썼다. 하지만 그도 일찍 죽고 버지니아는 식품도매상인 마지막 남편 켈리씨를 만나 말년 결혼생활을 보냈다. 클린턴대통령은 기자회견석에서 어머니 얘기가 나왔을때 벌컥 화를 내며 『내 어머니는 훌륭한 분이다. 더이상 얘기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고향사람들은 버지니아여사는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재혼했을뿐이며 모든 미국사람들이 어렵게 살던 당시 여성으로서 당당히 직업을 갖고 아들을 잘 키운 훌륭한 인물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미국이라고 5번 시집을 간것이 자랑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회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 다른 사람과의 단순우열비교보다는 「가난이라는 적을 이긴 사람」이라든지 「험한 자연을 일궈 농장을 만든 사람」 또는 「기계를 만들어 인간의 힘을 늘린 사람」등에도 존경을 바치는 인간평가의 복수기준을 갖고 있어 버지니아여사의 다혼도 흠이 되지는 않는다. 여성이지만 당당한 직업을 갖고 가난을 이긴 사람이라는 데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것이다. 한국사회는 「누가 누구를 이기느냐」는 식의 싸움개념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배의 대상을 자연·기술· 환경등으로 보다 넓혀간다면 사회의 각박함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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