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온통 규제완화 문제로 야단법석이다. 정부부처마다 하루에도 몇 건씩 규제완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고 청와대에 규제완화 점검반까지 설치됐다. 조금 있으면 『정부 규제때문에 기업을 못해 먹겠다』는 기업인들의 오랜 불평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좋다. 지금까지 30여년간 정부경제정책의 골격을 이뤄온 규제와 통제는 그 약효가 바닥났을뿐만 아니라 거꾸로 성장의 발목까지 잡고 있는 형국이므로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방향도 옳다.
그러나 규제완화를 한다니까 이것도 하나의 유행처럼 러시현상을 일으켜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다 풀어버리겠다는 식으로 나가는 경향이 생겨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규제완화의 대상에 물가가 포함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정재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공공서비스 요금을 정부의 규제로 억제하면 괜한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앞으로는 인상요인이 있으면 과감히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경제운용계획에 대해 언급하면서 『매년 물가억제목표를 수치로 설정, 거기에 맞추려고 경직적으로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보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지적하고 『올해에는 물가목표 자체를 수치화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를 규제완화차원에서 보는 시각에는 경제적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 규제완화의 도도한 물결속에 정부의 기초적인 정책기능마저도 함께 떠내려가는 상황이 연상된다. 공공요금이나 서비스요금에 대한 정부의 고삐가 풀리면 「강자의 경제」가 등장한다. 버스요금이나 택시요금 음식값 목욕료등을 올린다고 해서 소비자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게 아니다. 수돗물값을 올린다고 빗물을 받아먹을 수는 없기때문에 값을 올려도 서민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요금의 경우 가장 큰 인상요인은 교통체증이다. 교통체증탓에 돈이 안벌리니 수지가 나빠 요금이라도 올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통체증의 해소는 방치한채 요금만 자율화하겠다면 사실상 정부기능의 포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때문에 재무부등 일부부처에선 『규제와 정책을 엄밀히 구분해달라』는 주문을 이미 내놓고 있다. 규제완화가 진행될수록 물가정책만큼은 더욱 강화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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