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이념주도시대 퇴조/경제력이 국제질서 좌우/유엔·WTO영향력 증대/지역적 통합움직임 활발/1국에 의한 세계질서재편 불가능/국경의미 퇴색·상호의존체제 구축/민족 분리독립운동 결국은 국제화추세에 흡수 다음은 한국일보가 국제화시대를 대비하여 마련한 신년특집 「세계석학과의 대화」시리즈 4회분 가운데 두번째로 주제는 「탈냉전시대의 국제정치판도 변화」이다. 지상대담에 참가한 토론자는 제임스 캘러헌 전영국총리, 소화택 중국 인민일보사장, 스즈키 요시오(영목숙부) 일본 노무라(야촌) 종합연구소이사장,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 전소련대통령수석고문, 진 커크패트릭 전유엔주재 미대사,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이다.【편집자주】
―소련붕괴이후 이념대립을 대체해 새로운 국제질서형성을 주도할 역동의 원리는 무엇인가.
▲커크패트릭=소련제국주의는 70년을 존속해 왔다. 아무리 소련제국이 무너졌다해도 그 여파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것이다. 극우파 러시아 지도자 지리노프스키의 등장은 바로 이를 말해주는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참다운 가치인 자유라는 새로운 깃발을 향해 세계는 전진할것이다.
○복수의 지도력
▲스즈키 요시오=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국제정치질서는 일국패권주의에 의해 유지돼왔지만 앞으로는 복수의 지도적 국가에 의한 협조로 질서가 유지될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으로는 유엔안보리, 경제적으로는 서방선진7개국(G7)회의등이 세계질서를 협의하는 장이 될것이다. 앞으로는 어떠한 국가도 19세기부터 20세기 초기까지의 대영제국이나 제2차대전후 냉전종결까지의 미국처럼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갖는 일은 없을것이다. 즉 경제적 우위성을 바탕으로 정치적 군사적 패권을 장악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기술정보의 확산과 자본의 국제적 이동은 경제력의 균등화를 초래하며 냉전의 종결로 소국이 대국의 정치적 군사적 우산밑으로 들어가야 하는 필요성을 줄여 주기 때문이다.
▲야코블레프=새로운 국제질서는 20세기와는 달리 패권주의적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을것이다. 핵전쟁의 위협도 사라질것으로 보인다. 인류는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길 원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같은 방향으로 강대국들이 정책을 추진해 나갈것으로 보인다. 또한 과학과 기술, 정보등의 발전은 세계 각국을 아주 가깝게 만들것이며 이로 인해 세계는 국경이 없어질것이다. 정치가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국경은 점차 없어지고 각 민족이 상호 협력하고 공존하는 체제가 구축될것이다.
▲김경원=너무 단순화시킨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이념적 대립이 종식된 후 세계정치는 경제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반세기동안 세계정치가 이데올로기와 군사력에 의해 주도되었다면 현재의 세계는 경제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사실상 한 특정국가의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하는데 있어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이데올로기나 군사력이 사용가치를 상실하고 이 자리를 경제력이 대체, 실제 사용가능한 수단이 되고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모든 국가는 경제력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고있는것이다.
더욱이 정보테크놀로지발전에 힘입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민주화의 물결이 일고있으며 인류는 민주화시대에 살고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를 통해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기대나 요구는 바뀌었다. 국가의 추상적인 영광이나 세계정치에서의 역할보다는 국민 자신들의 실제이익보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 즉 민주화될수록 국가는 더욱 경제적 번영을 국민들에게 제공해야하는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향후 국제정치의 역동원리는 경제제일주의(PRIMACY OF ECONOMY)가 될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캘러헌=나는 유감스럽게도 조지 부시 전미국대통령이 말했던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되고 있다는 징조를 찾아볼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국제질서」란 자유와 정의를 바탕으로 한 조화로운 국제사회여야 하는데 그러한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화유지란 측면에서도 큰 진전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엔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분쟁은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가난과 고통과 살상을 초래하는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엔이 상설평화유지군을 유지해야한다고 본다. 유엔의 결정이 내려질 경우 분쟁에 개입할 수 있도록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구질서하의 동서블록은 지역블록으로 바뀌는 경향이 뚜렷하다. 유럽, 아시아태평양, 중동, 아프리카등의 권역별로 전개되는 지역주의는 국제적역학구조에 어떤영향을 미칠것인가.
○동아경제 주목
▲소화택=동아시아 지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20세기 후반 50년중 가장 주목을 끄는 대사건이었다. 이는 6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우선 일본이 경제발전에 주력한 결과 일본의 경제가 세계의 선도적 위치에 놓이게 됐다. 이어 「아시아 4소롱」으로 불리는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등이 분발하여 뒤를 좇았다. 그 뒤를 또 말레이시아등 아세안 국가들이 바짝 뒤따르고 있다. 아시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면적이 제일인 중국은 과거 40년간, 특히 개혁·개방을 추진한 15년동안 세계가 주목하는 발전을 이룩했다.
세계경제가 정체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는 고속 성장했으며 투자가 신속히 확대되고 활발한 다변무역, 지역간의 협력 강화등으로 활력이 충만했다. 아시아 개발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과거 20년동안 동아시아지역의 경제는 연평균 8%씩 성장, 선진국의 평균 3%의 성장에 비해 훨씬 높은 상장률을 기록했다. 18억의 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은 장기간 이러한 높은 성장속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이는 세계경제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적게 잡아도 앞으로 수년동안 동아시아지역의 발전 속도는 세계 선두위치를 지킬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아시아의 다른 지역 국가들도 따라 동아시아지역 경제발전의 큰 흐름에 들어 갈 것이다.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발전에 있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세계평화를 유지함에 있어 중대한 안정요소이다.
▲스즈키 요시오=국가나 민족이 각각의 역사나 문화의 개성을 주장하듯 미주대륙과 유럽, 동아시아, 중동등은 지역으로서 그 개성을 자각하고 어느 정도 지역주의적인 움직임을 강화해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역분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복수의 지도적 국가들의 협조에 의한 국제정치질서의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 지도원리에는 동아시아문화의 전통인 다신교적 절충주의,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기회균등주의, 점진주의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커크패트릭=민주주의는 복수주의, 다원주의를 내포하는 법이다. 동유럽은 소련제국주의 아래서 이런 다양성의 유지를 허여받지 못했다. 국가 또는 민족그룹이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지금 동구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요소이다. 모든 나라나 민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식해 자기를 소중하게 간직할수 있게 되고 그런 정체성의 바탕위에서 지역주의가 구성될 것이다.
○지리여건 변수
▲김경원=과거 냉전시대에는 지역주의를 거론하기가 힘들었다. 냉전시대의 국제질서는 어떤의미에서 지역구분을 초월하고, 건너뛰는 동맹관계로 구성돼있었기 때문이다. 공산진영은 후일 중소관계가 나빠지긴 했으나 공산국가간 하나의 연방형태로, 중소뿐아니라 동구 쿠바가 결속된 한 덩어리로 존재했고 자유진영도 미국과 서구가 하나로 뭉쳐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국과 동아시아의 쌍무적인 동맹관계등의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다. 따라서 냉전시대의 동맹체제는 지역화현상과는 무관한 세력분포라고 여겨진다.
냉전이후 지역을 초월해 응집력을 지녔던 이데올로기는 더이상 기능하지않게 되었고 대신 경제우선주의가 부각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자연히 지리적 여건이 경제통합의 속도를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하게 되면서 인접국간의 경제협력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가령 유럽의 경우 마스트리히트조약에서처럼 국가간 의도적인 정책적 통합노력도 볼수있으나 국가들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지역내 통상을 늘려가는 추세는 확연하다. 아시아지역도 역내교역의 비중이 역외교역에 비해 큰 속도로 확대되고 있음을 볼수있다. 이는 경제에 있어 자연적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이념보다 경제가 주도하는 국제정치에서는 자연히 지역주의가 등장하게 마련인 것이다.<7면에 계속>
<6면에서 계속>
역사에 있어 지역주의의 의미와 위상에는 이견이 있을수 있다. 지역주의(REGIONALISM)가 반드시 보편적 세계적 다자주의(MULTINATIONALISM)와 모순되는 것인가, 아니면 지역주의를 국가들이 다자주의의 세계로 가는 과정중 하나로서 받아들일것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논란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역통합이 민족국가의 한계를 구속하지않고 인간활동의 범위를 확대시킬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냉전종식이후 국제분쟁의 가장 큰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는 민족주의의 미래는. 또 새로운 정치질서아래 개별국가는 어떤 위상과 역할을 지닐것인가.
▲커크패트릭=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가 그 해답을 말해주고 있는것이 아닐까. 그들은 각각 민족성을 바탕으로 갈라서기로 했고 평화적으로 갈라선후 좋은 이웃으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세르비아가 타민족의 분리움직임을 폭력으로 막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것이다. 만일 국내외적으로 이런 폭력동원의 장치만 없앨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것이다. 개별국가의 정체성을 용인하고 수용하는 그런 국제사회만큼 개별국가와 국제사회의 위상을 더 높여주고 뚜렷이 해주는 경우는 없을것이다.
○패권주의 실패
▲야코블레프=지난 12·12러시아총선에서 극우민족주의세력인 자유민주당이 커다란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유럽각국에서도 민족주의 선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나는 폐쇄적이며 분리주의적인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승리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미래가 없다. 식민지제국의 상태에서 민족주의는 반동적으로 파생됐다.
20세기에서 보듯 식민지제국주의나 패권주의는 실패하고 말았다. 각 민족이 민족자결권을 갖고 그 민족의 독특한 언어·문학·문화등을 발전시킬 수 있지만 그 권리는 국가의것이 아닌 국민의것이다.
한민족이 타민족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전제아래 각 민족은 인류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캘러헌=옛 동구권 국가중 체코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분리독립한 슬로바키아공화국등은 서유럽과의 관계를 복원하는데 큰 진전을 보았다. 이들은 역사 문화 상업적으로 서유럽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과거의 관계를 복원하는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려움은 따르겠지만 이들 국가들은 서유럽과 유사한 경제체제를 갖추고 멀지않아 지금은 유럽동맹(EU)으로 이름이 바뀐 유럽공동체(EC)의 회원국이 될것이다.
정치적으로 이들 동유럽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내리지는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서유럽이 깊은 경제불황에서 깨어나면 동서유럽은 정치 경제적으로 더욱 공고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을것이다.
러시아는 아직까지도 예측이 어려운 존재이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서방은 물론 이웃 국가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평가는 이른 단계이다.
○가로놓인 문제
▲소화택=20세기에 발생한 중대한 변화인 「냉전」이 이미 과거의 역사가 되어버렸으나 냉전종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것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며 인류가 평화를 이룩하는데는 여전히 거대한 도전이 가로놓여 있다.
우리가 직면한 세계는 다원화한 세계이며 새로운 세기는 여러 종류의 가치관이 공존하는 세기가 되어야 한다. 상호존중·상호평등·상호개발과 공동 번영의 개방된 세계가 되어야 한다.
중국 옛말에 「만물이 같이 성장하여도 서로 상처를 입히지 않고 길을 같이 걸어도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만물병육이불상해, 도병행이불패)는 말이 있다. 세계에는 1백80여개 독립주권국가가 있고 1천 이상의 민족이 있으며 서로 다른 사회제도·종교신앙·문화전통과 생활방식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의 화약·나침반·제지술·인쇄기술이 서방으로 전해지고 서방의 근대 과학 기술이 동방으로 전해진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문명은 모두 상호 영향을 받는다. 고추·토마토의 원산지는 아메리카대륙이고 홍당무의 원산지는 북유럽, 가지의 원산지는 인도인데 현재는 세계가 함께 누리는 채소가 되었다. 만일 인류문화의 교류가 없었다면 우리 세계는 몹시 무미건조했을것이다.
유엔헌장의 기본정신과 원칙은 각국간의 완전평등관계를 건립하여, 각국 인민의 선택을 존중하고 한가지 방식, 한가지 가치관을 남에게 강제하지 말자는것이다. 어떠한 국가이든지 패권을 추구하지 말고 약육강식의 강권정치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각국은 서로 상대를 평등하게 대해야하며 같은 점을 구하되 다른점을 그대로 두며 우호합작하고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발전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었다. 그것은 아시아· 태평양지구의 다양성이 경제적으로 상호 융합과 상호 보완의 필요성을 결정하고 있으며 안정된 국제평화환경이 조성되어야만이 각국 경제가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는것이다. 새세기를 맞이하는 이때 세계는 평화·안정·공정·상호 이익을 주는 국제정치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
―국제질서의 재편은 지구촌공동체를 향한 통합과 공존의 방향을 택할것인가 아니면 경쟁을 심화시켜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킬것인가. 또 각각의 경우 범세계적 기구인 유엔이나 각 동맹체제의 역할은 어떤것인가.
○유혈사태 계속
▲캘러헌=보스니아나 소말리아에서 보듯 지구촌의 유혈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또한 유고내전은 그 양상이 비이성적일 뿐 아니라 야만적인 형태까지 띠고 있다. 마치 고대의 증오와 복수전을 방불케한다. 때문에 합리적인 해결책이 뿌리내리기는 힘들다.
이같은 사태를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은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비화하기 전에 국제사회가 손을 써야 한다는것이다. 3년전 이같은 비극의 징조가 보였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냈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약 그때 우리의 조언을 받아들였더라면 훨씬 적은 혼란과 대가를 치르고 유고내 공화국들의 분리가 가능했을것으로 판단된다.
▲야코블레프=나는 21세기가 적극적인 통합과 공존을 지역적으로 세계적으로 추진하는 시대가 될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유엔이 각종 국제분쟁을 예방할 뿐만아니라 통합과 연대를 위한 국제정부로서의 역할을 하는 기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유엔의 새로운 역할은 결코 서둘러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커크패트릭=국가나 민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겠다는것을 분쟁의 요인으로 봐서는 안된다. 상대방의 자부심을 인정하고 폭력없이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선의의 경쟁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팽배해져야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그 민족 그 국가가 해야할 일이고 그 민족 그 국가의 철학으로 정착해야 할 문제이지만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도 이를 위해 물론 엄청난 일을 떠맡아야 할것이다.
―국제질서재편의 주도권은 어떻게 전개될것인가. 또 재편과정에서 각 강대국들의 각기 상이한 경제력과 군사정치력등은 세계적 리더십을 어떻게 변모시킬것인가.
○경쟁시대 절감
▲커크패트릭=미국의 리더십이 가장 문제인데 현재도 미국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일한 슈퍼파워」는 아니라고 본다. 미국은 정치 경제 군사 정보등의 분야에서 확실히 상대적으로 강력한 위치에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절대적 우위에 있는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볼때 미국보다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현재도 있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정치 군사적으로도 미국이 반드시 막강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공정한 경쟁사회가 앞으로 펼쳐질것인데 누가 앞으로 이 경쟁에서 이기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의 성공, 북미자유무역협정의 발효등은 이 경쟁의 시대를 실감케하는 일들이 될것이다. 굳이 리더십을 따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경쟁은 여러 분야에서 일어날것이며 여러 면에서 새로운 리더를 만들것이다.
▲야코블레프=국제질서의 재편을 주도하는 국가는 없을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극단체제가 소멸되고 제국도 사라질것이다. 20세기에 우리가 겪었던 극단체제는 세계를 양극으로 갈라놓았다. 이같은 과정이 재현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가장 강력한 국가도 단독으로 국제질서개편의 주도권을 가져서는 안된다. 강대국들은 상호 협력하는 체제속에서 일방적 독주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해야할것이다.【정리=조재용·이재렬기자】
◎개별국가,민주화진행 국민기대 해결 고충/경제전쟁 격화되나 세계는 통합방향으로
김경원박사는 미래에 전개될 국제정치상의 가장 큰 변화로 『개별국가가 국민경제를 통제하는 힘은 약화되고 세계무역기구(WTO)같은 국제기구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개별국가로서는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국민들의 기대와 욕구가 늘어나 이를 원만히 해결하는데 한층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것으로 전망했다.
또 탈국가주의를 표방한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유고 소말리아등에서 보듯 민족주의가 강하게 부상하고 있으나 후발국가에서 민족주의의 충동을 자제하지 못할 경우 자신의 행동범위를 스스로 속박하는 「자해행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쌀개방과정에서 겪었듯이 경제에 있어서 국가의 고전적인 주권은 점차 제한되기 때문에 국제화, 세계화의 추세에 발맞추어 나아가야 한다고 김박사는 강조했다.
역설적인것은 국가간의 경제적인 경쟁은 격화되나 세계는 점차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박사는 『경제전쟁은 치열해지겠지만 이것은 서로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것이기 때문에 군사충돌이나 전쟁으로 이어지는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경제분쟁의 경우 앞으로 유엔이나 WTO등의 국제기구가 조정하겠지만 이들의 역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유엔의 경우 지금까지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다르지만 결국 인류가 유엔을 「살아있는 유기체, 생명체」로 발전시켜 나아간다면 인류를 위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평화유지활동(PKO)을 상비병력으로 마련하려는 계획도 나오고 있지만 유엔의 향후 입지는 결국 「인간의 창의성」에 달려있다. 김박사는 이같은 창조적 과정에 한국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한 『앞으로 세계의 리더십은 과거의 군사력에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세계를 지도할 비전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이런 측면에서 지난 20∼30년간의 추세로 보아 동아시아의 경제력이 괄목할 만한데 앞으로 이 지역 국가들이 세계의 지도적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이들이 어떠한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내다 보았다. 가령 중국이 21세기 중반에는 군사·경제력으로는 세계의 초강대국이 되겠지만 세계질서에 대한 중국의 구상과 철학적 비전이 어느 정도인가의 문제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김박사는 동아시아의 부상에서 핵심적 요소로 중국과 일본을 꼽았다.
중국은 군사초강대국에서 경제강대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으나 일본이 앞으로 경제력에 맞는 군사대국화를 추구할것인가도 국제정치상의 큰 관심사이다. 김박사는 이는 결국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해 역사적으로 유럽과 마찬가지로 세력균형정책을 추구해왔다. 미국은 중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반서방동맹체제를 형성하는것을 제일 우려하기 때문에 중일관계를 미묘하게 균형시켜 나아갈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미국이 일본에 대한 안전보장의 역할을 신빙성있게 이행하느냐와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변수가 될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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