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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정치인 부심/“사실상 권력교체” 음지·양지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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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정치인 부심/“사실상 권력교체” 음지·양지 교차

입력
199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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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군출신 “서리” 상도동 “햇빛”/박관용·최형우 “정국운영 핵심”… 서석재 “재기 채비”/거센 사정태풍… 박철언·박준규 “쓴잔” 이원조 “유랑” 정치가 있는 한 정치인의 부심은 있게마련이다. 특히 정변이나 정권교체는 그 부침의 진폭을 크게 한다. 5·16군사쿠데타,유신,「10·26」,「12·12」등 한국정치사의 일대사건은 정치세력의 변화를 가져왔고 유신에서 5공으로, 5공에서 6공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정치인의 명멸은 크게 엇갈렸다.

 김영삼정부가 들어선 93년에도 예외없이 정치인들의 부상과 몰락이라는 궤적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 궤적은 과거의 부침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어 의미있게 음미해 볼만하다.

 우선 현정부의 출범은 단순한 권력이동이 아니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유신 5공 6공은 헌법학적으로는 다른 정권이지만 모두 동일한 노선과 기반을 갖고 있어 정치적으로는 유사한 정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정권은 군출신이 권력의 중심축에 포진하고 관료세력을 외곽에 두는 구도였고 내용상으로는 근대화라는 명분아래 개발독재와 권위주의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 지역적으로는 대구·경북(TK)출신들이 30여년간 권력을 독점하는 형국이었다. 

 반면 현정권은 권력의 핵에서 군세력을 완전히 배제했다. TK세력도 감소됐다. 대신 과거 권위주의정권에 대항한 이른바「민주화세력」이 중심을 형성하게됐다. 한마디로 사실상의 권력교체, 즉 과거정권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권력주체가 형성된 것이다.

 새 권력주체들은 과거정치행태를 비판하는 새로운 정치규범을 제시했고, 지난 정권의 주축세력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결과 TK와 군출신인사들은 된서리를 맞았고 김대통령과 함께 민주화투쟁을 해온 야당출신들이 득세를 하게됐다.

▷떠오른 정치인◁

 금년 정국에서 상승곡선을 그린 정치인은 단연 상도동출신의 민주계다. 

 청와대―민자당―정부의 3각축에 박관용대통령비서실장을 필두로 최형우내무장관 서청원정무장관 문정수민자당사무총장 이원종정무수석등 민주계가 버티고있다. 민자당의 중간당직자로 강삼재 백남치의원이 민주계중심의 국정운영에서「허리」역할을 하고있다. 아울러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황명수전사무총장 김덕롱전정무장관 이인제전노동장관도 외곽에서 나름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서석재전의원은 사면복권돼 정치일선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있다.

 개인별로 보면 이번 당정개편에서 등용된 최내무 서정무 문총장 이정무수석이 가장 부각된 인물들이다. 최장관은 정권출범때 민자당사무총장으로 재산공개등의 개혁조치를 주도하다가 아들의 부정입학사건으로 낙마, 한동안 야인의 고통을 맛보아야했다. 그는 내무장관에 올라 다시 정치전면에 나섬으로써 실세의 위치를 굳건히 확보했다. 

 비민주계에서 부상한 정치인을 찾기가 쉽지않다. 사정정국때『맞지않으면 다행』이라는 비유가 나돌 정도로 비민주계는 움츠리는 모습들이었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한동의원은 민정계중진으로서는 처음으로 요직에 기용되는 저력을 발휘했다.

▷지는 정치인◁

 민주계의 상승은 과거 세도가의 쇠퇴와 직결됐다. 과거정권출신들의 비운은 재산공개때부터 시작돼 동화은행비자금 슬롯머신수사 포철세무조사로 계속됐다.

 재산공개로 인한 퇴진의「서곡」은 유학성전의원부터 시작돼 당시 국회의장인 박준규, 의장을 역임한 김재순 두원로의원으로 이어졌다.

 김전의장은 부인 명의의 강원도별장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자 3월29일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는 사퇴하면서「토사구팽」(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이라는 유명한 말을 던지기도 했다. 김씨는 7선의 원로정객으로서「추하게」은퇴한다는 사실에 울분을 터뜨렸던 것이다.  

 부동산투기혐의를 받은 박전의장은 김씨와는 달리 탈당을 선택, 민자당지도부의 사퇴권유를 뿌리쳤다가 결국 석달후 외유중에 의원직을 사퇴했다. 박씨는 박정희정권시절 공화당 당의장을 지냈고 6공때 민정당대표위원을 역임한뒤 14대국회의 의장을 맡는등 20년이상을 권력상층부에서 지내왔다. 그런 그도 여론과 대세에 저항하지 못하고 정치권밖으로 밀려나가야 했다. 

 이어 터진 동화은행비자금사건은 김종인 이원조 두 의원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씨는 사건이 표면화되자 돌연 출국한뒤 의원직을 사퇴했으며 현재 일본에 은신해있고 김의원은 5월말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6공의 경제수석 보사부장관을 지냈으며 이씨는 5,6공의 정치자금을 도맡아 조달한「금융계의 황제」였다.

 가장 극심한 추락은 박철언의원의 경우. 그는 슬롯머신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5월 구속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 황태자로 불리며 쟁쟁한 정객들도 박씨 앞에서는 굽신거렸던 6공시절을 반추하면, 박씨의 처지는 「화무십일홍」에 다름아니다. 포철세무조사로 거액을 추징당한 박태준전민자당최고위원도 불운의 대표적 케이스이다.【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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