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12관왕·신4인방 약진/부산에 국제기원 창설 “회오리” 올해는 한국바둑 최고의 해였다. 우리나라에 현대바둑이 도입된지 50년만에 처음으로 세계 4대 기전을 석권, 세계최강의 바둑왕국임을 과시한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이는 세계 바둑역사상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국가대항 단체전인 진로배 우승(2월26일)을 스타트로 서봉수 9단의 응씨배 제패(5월20일), 이창호 6단의 동양증권배 2연패(6월8일), 유창혁 6단의 후지쓰배 우승(8월7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여서, 국내 바둑팬들은 일년 내내 열광과 환호속에 파묻힐 수 있었다.
프로기사 개인으로는 아창호 6단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동양증권배 2연패를 비롯, 전대미문의 12관왕을 차지한 이6단은 기존 4인방 체제를 급속히 와해시키며 1인독주시대를 열었다. 이 6단은 기록면에서도 금년 전적 83승18패 (승률 82·2%)로 승률 및 최다승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 국내기사 가운데 최고 기사임을 입증했다.
다음으로 두각을 나타낸 기사는 유창혁 6단. 유 6단은 올해 후지쓰배를 차지한 것을 비롯, 왕위타이틀을 2연패하는등 이 6단의 최고의 라이벌로 등장했다. 금년 전적은 67승19패 (승률 77·9%)로 승률 및 최다승부문 2위를 차지, 명실상부한 「이-유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유 6단은 이같은 활약에 힘입어 이 6단을 제치고 올해 바둑계 최우수기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은 급격한 퇴조현상을 보였다.
올 한해동안 이 6단과 여섯번 도전기를 벌여 최고위전 하나만 겨우 이겼을뿐 모두 참패를 당한 조 9단은 기록면에서도 승률 7위, 다승부문 공동 4위로 생애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또 국기타이틀을 빼앗기고 무관으로 전락한 서9단은 다승부문에만 9위에 올랐을뿐 승률부문에서는 10위권에조차 들지 못했다.
이밖에는 「신4인방」이라고 불리는 신예기사 그룹의 약진이 돋보였다. 윤성현 4단, 윤현석 3단이 각각 패왕, 박카스배 도전무대에까지 진출했고 최명훈 3단, 양건 2단등이 각종기전 본선에서 정상급 기사들을 잇달아 격파해 기염을 토했다. 이밖에도 김성룡 3단, 이성재 초단등 소위 충암사단의 「겁없는 아이들」이 맹위를 떨쳤다. 특히 지난 6월 충암고 출신기사들의 단위 합계가 1백단을 돌파함으로써 앞으로도 더욱 충암사단의 돌풍이 거세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바둑외적인 분야에서는 국제기원이 창설돼 올해 바둑계에 한차례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바둑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며 부산지역 아마강호들을 주축으로 자못 의욕적인 출발을 선언했던 국제기원은 그러나 기존 바둑계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법인구성도 하지 못한채 사설단체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국제기원은 그동안 두차례의 입단대회를 개최, 19명의 프로기사를 선발했으며 내년에는 자체기전도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으나 성사여부는 아직 미지수여서 「찻잔속의 돌풍」으로 그치고 말 공산도 크다.
한편 국제기원의 설립은 결과적으로 국내 바둑계에 작지 않은 변화를 몰고 왔다. 국제기원의 설립을 계기로 그동안 한국기원이 아마바둑계에 대해 너무 소홀했다는 사실이 크게 부각되면서 일반인들의 입단문호가 확대되고 아마추어들에게도 7단이 부여되고 아마바둑연맹설립이 가속화되는등 아마바둑 및 지방바둑 활성화 방안이 잇달아 발표됐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들은 모두 하루아침에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앞으로 한국기원이 어느 정도 성의를 갖고 추진하느냐에 달려있는 만큼 내년도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박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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