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통치종식 헌법안마련 큰족적/차별법 폐지 등 「공존의 삶」 앞장서 실천 『과거의 상처보다는 미래의 화해를 중시하는 신정치질서를 향한 정치적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지난 10월15일 노르웨이의 노벨상위원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 클레르크대통령(57)을 올해의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클레르크가 남아공민주화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3백50년에 걸친 남아공의 백인통치를 끝낼 헌법안을 마련, 민주화 원년의 기틀을 세운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93년 한해를 눈코뜰새 없이 보냈다. 4월 들어 백인보수파의 반발속에 개헌논의를 시작한 클레르크는 7월에 다당제총선 일정을 확정, 발표했다. 9월에는 임시정부 역할을 수행할 과도행정위원회(TEC) 구성안을 통과시켰고 12월 22일 드디어 새 헌법안을 채택했다. 이 헌법에 따라 내년 4월27일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다당제총선이 실시되면 3백50년 동안 지속된 남아공의 백인통치는 종식된다.
클레르크는 새 헌법 채택후 『우리는 위대한 대장정을 시작했다』면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역사적인 문턱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클레르크가 89년 남아공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그가 이런 큰일을 해내리라고 점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취임 즉시 흑백시설분리법을 폐지하고 백인전용 해변휴양지를 전면개방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흑백공존을 향한 개혁정치의 첫 발걸음이었다.
무장투쟁을 외치는 흑인들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낸 결정적인 조치는 90년2월 넬슨 만델라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의 석방이었다. 동시에 30년 넘게 불법화됐던 ANC,남아공공산당(SACP),범아프리카회의(PAC)등 모든 흑인정치단체를 합법화했다.
그의 민주화작업은 인종차별법의 폐지로 가속화됐다. 91년6월부터 백인독점의 토지법과 인종분리지역법,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법이 차례로 폐지됐다. 물론 그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된것은 아니다. 백인의회 보수파들은 그를 「배신자」로 비난했고 흑인좌파는 「사기꾼」으로 몰아세웠다. 그는 백인보수파의 반발에 대해 정면으로 돌파했다. 92년 3월 클레르크는 백인을 대상으로 백인권력독점체제의 포기와 흑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68.7%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클레르크는 소위 「귀족출신」이기때문에 그의 개혁의지는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36년 요하네스버그의 캘빈파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증조부와 부친이 상원의원을 지냈고 삼촌이 총리를 역임한 정치명문가의 후손이다.
72년 요하네스버그 남부 베리니깅주에서 국민당후보로 나서 의회로 진출했으며 체신부장관, 노동부장관, 교육부장관을 거쳐 85년 백인의회 각료평의회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내년 4월총선에서 넬슨 만델라ANC의장에게 패배해 정치무대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흑백공존을 위한 그의 개혁의지만은 남아공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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