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란 이름은 하나의 상징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이 땅에서 이루어진 진보적인 노력의 영광과 수난을 일면 대표한다. 그 김남주 시인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고 들린다. 그에게 더 앗아갈 무엇이 아직 남았단 말인가. 하늘도 야속하다. <내가 학교에서 상장을 타오면 『아따 그놈의 종이때기 하나 빳빳해 좋다』면서 씨앗봉지를 만들어 횃대에다 매달아 놓는> (「아버지」) 빈농집안의 맏이로 그는 태어나, 젊음을 세상의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항거 속에서 보냈으며 10년의 징역살이를 지불하여 「조국의 하나임」을 증거해 냈다. 마흔 여덟의 그에게는 이제 네 살난 개구쟁이 아들이 있다. 내가 학교에서 상장을 타오면>
나는 그의 유고가 우연한 육식의 질환 때문만이라고 여기지 못한다. 그는 순결한 영혼의 사람인 까닭이다. 지난 몇해 사이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거대한 안팎의 소용돌이 속에서 심신의 균형을 놓치고 만 것인가. 10년의 유배생활이 그의 몸과 마음 속에 독을 풀어 놓았던 것인가.
「실천문학」겨울호에 실린 근작시 5편에서 엿보이는 그의 심경은 투병 소식과 함께 우리를 비통하게 한다. 그것은 네 편의 절망과 한 편의 생명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삶은 벌거벗은 치욕의 거리에 내던져져 있다. 그곳은 작살난 개의 머리와 토막난 닭의 울대와 옆구리가 구겨진 깡통의 세계, 철사에 꼬인 꽃게의 발가락과 등이 구부러진 이상한 고기와 질식당한 꼬막의 땅이다. <그것은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구역질이 나는 토악의 세계> 이다. (「토악의 세계」) 그것은>
이 절망의 풍경 위에는 의분과 적개심마저 식어버린 차가운 냉소와 체념의 그림자가 어린다. 밖이 이렇게 보일 때 안의 풍경이 어찌 온전하랴. <요즘 나는 먹고 사는 일에 익숙해 졌다 어제도 오늘도 밤의 술집에서 즐겁고 나는 이제 새벽의 잠자리에서 편하다 …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나는 지난날의 기억들을 나는 이미 잊고 살아도 되는 것인가 아직도 수백의 사람들이 도피와 투옥의 세계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데 나는 누구인가 그 이름 하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이제 나는 아무짝에도 쓰잘 데 없는 사람이다> (「근황」) 요즘 나는 먹고 사는 일에 익숙해 졌다>
어린 처자식과 몸 뉘일 작은 집 한칸조차 무슨 대단한 호사라 여겨 그는 스스로 용납치 못하는 것인가. 자학에까지 나아가는 이 자기추궁의 진실성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이는 많지 못할 것이다.
나머지 한 편 사랑의 노래. <…저만큼 고추밭에서/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추석 무렵」).
그는 왜 진작 이 생기에 넘치는 천진의 세계로 시와 삶의 길을 터 갈수 없었던 것일까. 이 시 한 편에 걸어 나는 시인의 쾌유를 믿어 보는 것이지만, 「토악의 세계」를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시인의 운명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김남주 시인이 우리 몫의 고통을 외롭게 앓아내고 있다. 그의 고통은 누가 나누어 감당해줄 것인가.<문학평론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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