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없는 기소 수용불가”/무리한 수사관행 쇄신 또다른 계기로 시위진압과정에서 발생한 김춘도순경사망사건의 범인으로 구속기소된 한국외국어대생 배병성군(22)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혐의에 대해 법원이 20일 무죄를 선고한 것은 『확증이 없는 기소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증거주의원칙을 재천명한 판결로 평가된다.이 사건 재판부인 서울형사지법 합의24부(재판장 변동걸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갖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따라야 하고 이같은 증거가 없다면 유죄의 의심이 있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죄확증이 없으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을 재판부가 굳이 상세히 거론한 것은 엄격한 증거위주수사와 기소를 촉구하고 증거주의재판을 다짐하는 법원의 의지를 대변한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법원의 의지표명은 최근 경찰관이 살인누명을 쓰고 1·2심에서 유죄판결까지 받았다가 진범이 잡혀 큰 물의를 빚었던 것과 연관이 있는것으로 해석된다.
무고한 사람을 1년여간 억울한 옥살이를 시켜 사법제도전체의 신뢰성을 뒤흔들었던 이 살인누명사건은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보다 법원쪽에 한층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1·2심재판부는 살인의 직접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정황증거와 심증만으로 유죄를 선고, 검찰과 경찰의 무리한 수사 및 기소에 제동을 거는데 실패했었다.
따라서 비록 사안과 재판부가 다르지만 법원은 이번 배병성군 사건재판을 통해 증거주의재판원칙을 새롭게 다짐하고 나선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함께 이번 판결은 김순경사망사건을 다룬 경찰과 검찰의 수사자세에 대한 통렬한 질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과 검찰은 당초 지난 6월12일 한총련대학생들의 시위진압과정에서 김순경이 사망하자 이 사건을 학생운동권의 도덕성을 결정적으로 매도할 수 있는 사안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정정국속에서 지휘부의 잇단 비리노출로 곤경에 처해 있던 경찰은 시위진압경찰관의 사망사건을 경찰전체에 대한 여론의 방향을 변화시킬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경찰은 사건발생당시 현장상황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목격자진술등을 확보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시위대학생들이 김순경을 각목과 돌등으로 집단구타, 숨지게 했다』고 주장하고 나섰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시체부검결과와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나자 다시 민간법의학자들을 동원, 김순경의 사인을 놓고 논쟁을 거듭했었다.
결국 경찰은 H대 송모군을 용의자로 지목, 지명수배하면서 『송군의 범행을 입증할 증거와 목격자가 있다』고 강변하다가 다시 배군을 범인으로 단정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이 배군을 범인으로 단정하면서 내놓은 직접증거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신모씨(23)의 진술뿐이었다. 재판과정에서 신씨의 진술의 증명력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측은 뜨거운 공방을 펼쳐왔으나 재판부는 결국 『신씨가 당시 현장을 목격한 것은 인정되나 신씨의 일관성없는 진술로는 배군을 범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이번 판결로 경찰과 검찰은 철저한 보강수사나 증거수집조차 없이 우선 잡아넣고 보자는 고정관념에 얽매여 수사방향을 배군에게 집중시켰던 것은 아닌가 라는 근본적 회의와 함께 수사를 원점으로 되돌릴 필요성이 대두됐다.
한편 배군은 6월 27일 영장없이 강제연행된뒤 5일간 강제구금당하고 가족과 변호인의 접견요구를 묵살당했다며 서울경찰청 폭력계 경관4명을 불법체포 및 감금, 타인의 권리행사 방해등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해 놓은 상태이다.【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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