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파제압불구 숙제많아 산넘어 산/새 의회구성·토지사유화 등 잇단 혁신조치 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은 요즈음 기회있을 때마다 「역사적」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러시아의 93년은 역사적 사건으로 점철된 격동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옐친이 버티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역사적인 사건으로는 지난 12일 치른 총선 및 국민투표를 꼽을수 있다. 러시아는 이를 통해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최초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신헌법을 확정하고 다당제의회를 출범시켰다. 옐친 특유의 밀어붙이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밀어붙이기는 비상통치선언(3월) 대통령신임투표(4월) 의회해산(9월)에 이어 10월4일 의사당에 대한 공격명령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의사당에서 끝까지 저항하는 최고회의 보수파들을 탱크로 밀어붙였다. 이 사건은 볼셰비키혁명때 적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내전을 치른 이후 가장 큰 유혈사태로 기록됐다.
옐친은 기존의 공산체제를 무너뜨리는 또다른 「혁명가」이자 「파괴자」였다. 그는 레닌이 건설한 공산체제를 하나씩 허물어왔는데 토지의 국유화원칙을 바꾼 토지매매의 자유화포고령을 내린 10월 27일은 바로 레닌이 76년전 토지국유화를 선언한 날이기도 했다. 옐친은 특히 레닌이 무력으로 국가두마(의회)를 해산하고 창설한 최고소비예트를 역시 탱크로 해산하고 국가두마를 복원시켰다. 또한 크렘린앞 붉은 광장에 있던 레닌박물관은 폐쇄되고 러시아정교회는 제 모습을 되찾았으며 각 지방의 소비예트는 해산되고 새로운 민주의회가 들어섰다.
그는 최근 독일 슈테른지와의 회견에서 「러시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물음에 표트르대제와 야로슬라프대공이라고 대답했다. 표트르대제는 18세기초 서구화정책을 추진해 러시아를 명실공히 세계강국의 대열에 올려놓은 개혁군주였다. 야로슬라프대공은 11세기초 러시아최초의 법전인 「루스카야 프라우다」를 편찬, 법치국가의 뿌리를 내린 인물이다.
옐친도 친서방노선을 견지하고 민주적 신헌법을 확정함으로써 표트르대제와 야로슬라프대공과 같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헌법상으로 막강한 권한을 보장받고 있지만 그 권한을 이용해 개혁정책을 완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옐친이 러시아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것만은 분명하지만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것으로 보인다. 역사가들의 평가는 먼 장래에 내려지게 되지만 정치는 항상 발등의 불로서 정치가들의 발목을 잡는것이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