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군수체계 복잡·허술 “곳곳 함정”/무기사기 왜 생겼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군수체계 복잡·허술 “곳곳 함정”/무기사기 왜 생겼나

입력
1993.12.21 00:00
0 0

◎결재도장 70여곳… 조달에 수년소요/담당자들 경력짧아 전문성도 결여 국방군수본부 포탄도입사기사건의 파문이 갈수록 확대되면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빚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군 군수조직에 대한 일대 수술이 가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군수분야는 창군이래 거의 손질되지 않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폭적인 개혁이 뒤따를 전망이다.

 세간의 의혹처럼 이번 사건이 군내부공모자가 무기중개상과 짜고 벌인 치밀한 사전각본에 의한 사기사건이라면 군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관련자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감독체계의 대개편이 예상된다. 그러나 국방부의 주장대로 은행측의 착오로 대금을 잘못 지급하게됐고 뒤늦게 사기당한 사실을 알았다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연간 5조원이 넘는 국방부의 무기등 각종물자조달과정에서 얼마든지 이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편후에 무기도착”

 지난번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에서 드러났듯이 우리군의 무기조달(획득)체계는 너무 복잡하다. 무기를 사용할 일선군부대에서 필요한 양을 조사해서 무기를 지급받으려면 적어도 60∼70여단계의 결재과정을 거쳐야 하고 7∼8년간의 시일이 걸린다. 최초에 소요제기한 군의 담당장교가 예편하고 난 뒤에야 해당무기가 그 부대에 도착할 정도라는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교육용 포탄의 경우 포탄을 사용할 단위부대가 소요제기를 하려면 우선 상급부대인 각군사령부와 각군 군수사령부에 구입요청을 하게 된다. 군사령부와 군수사령부에서는 예하부대의 소요제기를 취합해 각군본부에 다시 소요제기를 하고 각군본부는 국방부군수국에 조달요구를 한다. 9개과로 구성된 국방군수국에서는 무기의 필요성과 예산편성여부등을 재검토한뒤 국방군수본부에 조달지시를 내리는데 군수본부는 조달지시된 품목을 입찰구입할 것인가, 수의계약할 것인가등 구입방식을 결정한 다음 공급자를 선정해 국내에서 납품받든가 수입하게 된다.

○「필요없는 포탄」 입찰

 납품·수입된 무기는 각군 군수사령부에 넘겨지고 각군군수사령부는 예하부대에 할당한다. 사용부대가 최초 소요제기를 한뒤 해당무기를 받기까지는 크게 6가지의 단계를 거치는 셈인데 각단계별로 담당자―과장―국장식의 결재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과정에서 ADD(국방과학연구소)·품질검사연구소등의 심의까지 받으려면 무기도입을 위해 70개정도의 결재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이번 사기사건은 6단계의 과정중 납품·수입단계에서 일어났는데 90㎜포탄의 경우 88년12월에 신용장개설이 이루어졌고 계약대로라면 89년6월께는 사용부대에서 90㎜포탄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사용부대는 당초 인도예정시점보다 4년반이 지나도록 포탄을 지급받지 못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단지 군수사령부가 군수본부에 몇차례 독촉했을 뿐이다.

 이번 사건의 문제점은 가장 먼저 이처럼 사용부대가 물건을 받아야할 시점에서 4년이 지났는데도 가만히 있었을 정도로 「필요없는」 무기를 어떻게 도입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육군포병장교(중령)출신인 한관계자는 『이번 사기사건에서 문제됐던 90·105·155㎜포탄은 미군의 전쟁대비예비물자로 국내에 상당량이 비축돼 있는데 아마도 우리군에서도 전쟁발발시 이포탄을 쓸것에 대비, 교육용으로 구입하려했던 것같다』며 『그러나 포탄은 신형·구형의 차이가 없고 이미 생산중단된 포탄을 굳이 같은 품목이라고 구입하려 했다는 것은 포병장교의 상식으로 납득이 안된다』고 밝혔다.

○대부분이 5년미만

 이관계자는 『이포탄들은 단위부대에서 직접 소요제기된게 아니라 거꾸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에서 각군사령부를 통해 소요제기토록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신형포탄을 갖고 교육을 해도 전시에 90㎜구형포탄을 사용할 수 있고 그러다보니 단위부대에서는 소요제기한 포탄이 몇년째 오지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결국 「필요없는」무기를 상급부대가 예하부대에서 소요제기토록 해 입찰공고까지 내게됐고 결국 생산되지도 않는 포탄을 공급하겠다고 나선 무기중개상을 스스로 불러들였다는 지적이다.

 두번째로 지적되는 문제점은 무기획득과정에 도사린 군관계자들의 전문성 결여다. 국방부군수국의 과장이나 군수본부의 처장들은 현역 대령 또는 일반행정직 서기관이 맡고 있는데 대부분 군수업무경력이 5년을 넘지못한다는 것. 『전방에서 대대장 또는 연대장으로 근무하다 군수국과장으로 발령받은뒤 순환보직 원칙에따라 또 2∼3년후 야전군으로 나간다면 누가 전문성을 갖고 일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전문성결여로 인해 이번 사기사건에서와 같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선하증권상의 하자가 발견됐는데도 이를 확인치 않았다든가 무기도착이 몇년째 지연됐는데도 이를 추적조사치않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것이다. 더구나 전문성결여는 무기의 성능이나 필요성등을 판단할때 무기중개상의 농간에 넘어가게 되는 요인이 되는데 군스스로 확보한 정보지식의 부족으로 중개상이 제시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직 비효율성 노출

 마지막으로 국방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수조달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힌것도 방향은 맞지만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이번 포탄도입사기사건은 단순한 비리차원의 「일과성 사건」이 아닌 군수조직체계의 비효율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지적이다.

 53억원어치 포탄을 도입하다 사기를 당했는데도  몇년째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군수체계의 전면적인 수정필요성을 입증하는것이다. 단위부대의 소요제기가 있으면 이를 취합해 성능평가와 필요성검토·조달방식검토등을 할 단일기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달물자 일부의 조달청이관은 군수비리를 줄이는데는 도움을 주겠지만 군수조직의 비효율·비전문성을 제거할 수는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민세금의 4분의 1이 국방예산으로 쓰이고 그중 절반이 무기등의 조달예산으로 사용되는데 이같은 엄청난 예산을 집행하는 군수조직이 비효율·비전문성으로 인해 누수되고 있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군수체계의 대수술은 불가피하게 됐다.【박정태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