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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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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3.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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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말의 동양은 개국과 쇄국의 두 파고에 시달렸다. 우리나라도 겉으론 개국, 속으론 폐쇄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구와 개화의 갈등이 깊어졌다. 1880년대에 민영익은 전권대신의 자격으로 외교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에 다녀왔다. 그는 방미소감을 그때 주한미국공사였던 푸트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어두운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밝은 데로 나갔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어둠으로 돌아왔다. 당장은 내가 갈 길이 어딘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나의 앞길이 밝혀지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는 그후 수구를 택했음인가 개화파를 모질게 탄압했다. 나중엔 고종폐위음모로 홍콩에 망명, 결국 외국에서 최후를 마쳤다.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보고 체험한 당시인의 정치와 국제감각을 미뤄 짐작할만 하다. ◆외부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시대상황과 역사의 흐름이 달라진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한 중 일 동양 3국의 변천과정을 알면 이 사실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서양이 동양을 후진 취급한 이유는 과학기술과 민권사상 및 제도가 선진화하였기에 그랬다. 일본이 이것을 가장 빨리 수용 소화해 부국의 길을 열었을 뿐이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을 계기로 개방과 국제화의 구호가 거센 물결처럼 닥치고 있다. 19세기와 달리 지금은 어둠에 가려 있지않다. 바야흐로 세계는 국가와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 경제제1주의로 치닫고 있음을 극명하게 안다. 우물안을 벗어나 망망대해로 나가야 할 시기임도 깨닫고 있다. 막막하다고 겁만 잔뜩 먹고 있으면 또 한발 밀린다. ◆경쟁력 강화란 눈앞에 온 21세기를 향한 실력쌓기이며 내부를 굳히는 일이다. 변화는 두려워 할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구호로나 맞서 간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19세기말과 20세기말의 한국은 결코 같을 수가 없다. 밝은 데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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