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농산물협상 어떻게했나/양국, 일등의식 “새면무효” 밀약/최후난관 쇠고기 배수진 “판정승” 한미 양측은 일찌감치 쌀협상을 마무리해 놓은 상태에서 『다른 나라를 자극시킬 수 있으므로 협상결과가 언론에 새어나가면 무효로 한다』는 약속을 해놓고 계속 연막작전을 편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측은 이때부터 제네바와 서울에서 『쌀협상이 난관에 봉착했다』며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흘려 「정답」을 숨겨왔다고 한 관계자는 털어놨다.
7일의 허장관과 캔터(USTR)대표회담을 비롯한 실무고위급회담에서는 쇠고기등 14개 기초농산물과 금융 공산품 서비스등의 시장개방이 주로 협의됐다. 문제는 허장관과 에스피장관의 마지막 담판인 13일 회담이었다. 허장관은 13일 상오10시 제네바 포름호텔 309호실에서 에스피장관을 마주대하는 순간등이 오싹했다고 말했다. 에스피장관이 갑자기 쌀협상내용의 수정의사를 비췄다는것이다. 일본 스위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등 한미쌀협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나라들이 한국쌀에 대한 특별대우내용이 지나치다고 미국에 항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에스피장관이 밝힌것이다. 허장관은 이때 『이미 합의한 사항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느냐』고 강력히 반발, 에스피장관의 『오케이』대답을 받아냈다. 이 말 한마디는 비로소 12일동안 끌어온 한미농산물협상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허장관과 에스피장관은 회담후 기자들에게 『만족할만한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쌀의 관세화개방원칙수용은 정부안에서 약 2개월전부터 검토돼 왔던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UR협상타결에 대비해 미국 일본의 쌀협상 추이를 봐가며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준비했다는것이다. 정부는 이때부터 관세화원칙수용이 대세라는 점을 인식, 관세화유예기간과 최소시장개방폭을 가능한 한 유리하게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수립에 들어갔다. 정부협상대표단이 김포공항을 떠날 때는 관세화개방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이 이미 정리돼 있었다는것이다. 정부는 이에 앞서 김광희농림수산부차관보를 제네바와 일본에 보내 쌀문제에 대한 GATT와 미국 일본등의 입장을 타진했다.
정부대표단이 2일 김포공항을 떠난지 불과 이틀만인 4일 미국에 관세화수용원칙을 통보한 후 구체적인 시장개방조건협상에 들어간것도 이렇게 충분한 준비가 돼있었기때문이다. 허장관이 김포공항을 떠나면서 「쌀시장 사수」를 국민에게 약속한것은 국내여론 무마를 위한 대내용 구호였던 셈이다.
정부대표단은 「쌀사수」일환으로 일정기간의 수입동결을 요구했으나 애초부터 이 요구가 관철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허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수입동결의사를 여러번 타진하기는 했으나 그 자체가 협상의제는 아니었다』고 실토했다. 「쌀사수」는 본래 없었던 협상카드였다는것이다.
한미농산물협상의 마지막 난관은 쇠고기였던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우리가 GATT에 양허한대로 97년7월부터 현행관세(20%)를 적용하여 한국쇠고기시장을 전면개방토록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한 관계자는 『미국의 요구가 워낙 완강해 다른 협상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고 말했다. 「허·에스피」간의 마지막 담판이 12일에서 13일로 하루 연기되고 차관보급 실무자회담이 12일 하루동안 4차례나 벌어진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12일 밤11시30분에 시작된 4차 실무회담은 6시간30분 후인 다음날 새벽6시에 끝났을 정도다.
허장관은 『미국의 요구대로 쇠고기시장이 97년 전면개방되면 국내 축산농가의 대부분이 쓰러질것』이라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미국이 결국 쇠고기 수입자유화 시기를 3년 연기하고 관세를 두배수준으로 올리는데 합의해주어 한미농산물협상이 무사히 끝났다.【제네바=이백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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