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국회에서 의결된 새 안기부법은 지난 30여년간 정부 위에 군림해 온 안기부를 정부 내의 한 기구로 복귀시키고 있다. 안기부위에는 대통령 한사람이 있을뿐 그밖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존재였던 안기부는 이제 정보기관 본래의 업무만을 수행하라는 법의 명령을 받고 있다. 각 신문들은 안기부가 이번 법개정으로 「창설이래 최대시련」을 맞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반발이 일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안기부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국회 정치특위에 나타난 한 안기부 간부는 『국회가 안기부의 이빨을 빼려 하고 있다. 실권은 다 박탈하고 처벌만 안겨줬다』고 항의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안기부는 초법적 특권을 뺏겼다고 섭섭해 할게 아니라 이제라도 「국민의 안기부」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뒤돌아 보면 안기부처럼 불행한 국가기관은 일찍이 없었다. 역대 독재정권의 충실한 파수꾼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권력을 휘둘렀으나, 부당한 권력이 커질수록 국민의 원성도 높아갔다. 안기부는 공작정치, 인권탄압, 용공조작등을 일삼는 공포의 대상으로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안기부는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대신 국민을 벌벌 떨게 했다. 죄지은 일이 없는 사람도 안기부 앞에서는 얼굴이 질렸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남북고위급 회담의 「훈령조작사건」도 안기부의 불법불감증에서 빚어진 사건이라고 짐작된다. 아직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으나, 그 사건은 당시 평양에 파견된 이동복전안기부장 특보등이 「가짜훈령」을 정원식회담대표에게 전달했던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때 우리정부는 북측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인모노인의 송환조건으로 이산가족 교환방문 정례화, 판문점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동진호선원 교환등 세가지조건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림동원당시 통일원차관이 우리측 조건을 완화시키기 위한 청훈을 보낸것을 알고, 이특보등이 「기존지침고수」라는 조작된 훈령으로 이를 막았다는것이 지금까지 파악된 사건전모다.
이특보등은 나라를 위해서 그같은 일을 했다고 말할 것이다. 남북관계를 둘러싸고 여러 입장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안기부는 「동진호선원교환」을 양보해서라도 이산가족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자는 림차관등의 전략이 오히려 북측의 유도작전에 말려들 위험이 있다고 판단, 서울에서 예비로 만들어 가지고 갔던 여러 훈령중 하나를 진짜인것처럼 전달했다. 림차관과의 공명심다툼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으나, 공명심만으로 그같은 일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같은 처사는 안기부가 국가안보라는 명분아래 수행해 온 초법적인 월권행위의 연장이었다고 보는것이 옳을것이다. 우리만큼 국가안보에 대해 잘 알고, 우리만큼 안보의식이 투철한 사람은 있을수 없다는 독점적·배타적인 「애국심」이 「훈령조작」까지도 서슴지 않게 했다고 보여진다.
제2의 탄생을 준비하는 안기부는 「법 안에 있는 안기부」 「정부 안에 있는 안기부」 「국민 안에 있는 안기부」가 돼야 한다. 법과 정부와 국민 위에 군림하며 국민의 원한을 사던 불행한 과거를 그리워 해서는 안된다. 초법적 권력은 결국 그 자신까지도 죽이는 독이 된다는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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