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규명은 흔히 「현실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친다. 과거의 정리와 청산은 언제나 이로 인해 좌절되는 일이 흔하다. 진실규명은 커녕 픽션이나 논픽션으로 다루기조차 쉽지가 않다. 관련 생존자들이 그냥 놔두지를 못한다. 12·12사태도 그런일들 가운데의 하나이다. 역사와 과거를 다룸에 너무 서투르고 망각 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10·26에서 12·12까지는 군사통치의 격동기였고 또다른 변혁이었다는데서 비극감이 고조된다. 초저녁에 울린 총성으로 「서울의 봄」은 이미 불행이 예고되었다. 당시의 치열한 체험과 경악 그리고 분노는 어느덧 과거사로 묻혀 버렸다. 아니 진실이 덮여진 것이다. 12·12의 연장선에서 생겨난 5공정권은 국가보위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단순논리로 사태의 논의조차 금기로 삼았다. ◆진실은 진실일 뿐이다. 밝혀지지 않으면 숨기거나 가려져 있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껍질을 깨야 속이 보인다. 이만한 상식을 돌파하기가 이리도 어렵다. 지난 10여년간 12·12사태를 계속 문제로 제기한 것은 결코 감정이나 앙금의 차원에서가 아님은 명백하다. 국가보위라는 명분이 바로 국가위기와 직결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국가 존립의 도덕성도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민정부는 12·12사태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역사의 심판에 맡길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역사의 심판을 준비하기 위한 진실규명이 선행되어야 함도 당연하다. 이 당위가 현실의 한계로 배제되고 있음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라니 아이로니컬하다. ◆12·12사태는 피해당사자들의 고소·고발에 따른 검찰의 수사가 진행중이다. 결말보다 중요한것은 검찰의 진실규명 의지라 할 수 있다. 「현실의 한계」를 얼마나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주목된다. 12·12는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인다. 휴일인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음을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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